■ 2026 설특집 - 우리가 믿어온 ‘富의 그릇’ 변천사
12t 돌덩이도 ‘화폐’로 약속 인정
소금·金처럼 가치 저장수단 변모
예금·주식·코인… 실체 계속 진화
세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설 연휴
우린 어떤 욕망의 시대를 좇을까
“새해 복(福) 많이 받으세요.”
병오년 새해, 인사를 건넨다. 의례적인 부분도 있지만 복 많이 받으시라고…. 복, 동아시아 전통 사상에서 복은 ‘오복(五福)’을 꼽는다. 먼저 ‘수(壽)’, 오래 사는 것. 단순히 장수가 아니라,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 다음은 ‘부(富)’, 재물의 풍족함이다. 이어 강녕(康寧·몸과 마음의 평안),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고 실천함), 고종명(考終命·편안한 죽음)을 이른다. 우리는 동서양이 교차하는 세계에 산다. 오복 중에서 생명과 삶에 대한 자세, 인생의 말미는 다를지라도 ‘부(富)’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돈과 화폐에 얽힌 역사를 탐구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우리가 좇는 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기에.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은 저서 ‘화폐경제학’의 첫 장에서 미크로네시아 캐롤라인 제도에 있는 ‘야프(Yap)’섬 주민들이 커다란 석회석을 가공해 화폐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기 500∼1000년 전쯤이다. 중앙에 구멍을 내서 바퀴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큰 것은 지름이 3.6m에 달하고 무게는 12t이나 됐다. 라이 스톤(Rai Stone)으로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거래할 때 돌을 주고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돌은 그 자리에 있고 소유권을 기록만 하면 됐다. 프리드먼이 이야기하고 싶은 사실은 화폐를 관통하는 본질이 ‘신뢰’라는 것이다. 결국 돈의 역사는 ‘부를 저장하는 그릇’으로서 ‘사람들이 무엇을 믿었는지’에 대한 변천사다.
소금을 넘어 금과 은이 화폐로 쓰인 것은 가치를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근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폐는 초기에 금의 ‘보관증서’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가의 신뢰를 업어 ‘법화’로 진화했다. 금융제도가 발전하면서 화폐의 범주는 넓어졌다. 은행 예금은 돈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고, 주식은 돈을 기업에 맡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부동산은 사라지지 않는 실물이라는 믿음 위에서 자산의 왕좌에 올랐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비트코인과 같은 ‘탈중앙화 화폐’를 낳았다. 묘하게도 라이 스톤과 비트코인은 닮았다. 물리적 소유가 아니라 소유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하다. 화폐는 늘 그 시대가 가장 신뢰한 대상의 모습으로 변해 왔던 것이다.
설 연휴, 여러 세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에는 복, 그중에서도 부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형태는 차이가 있어도 내 집 마련을 올해는 할 수 있을지, 주식 투자는 어떻게 했는지, 요즘 젊은 세대는 왜 이렇게 힘든지…. 변화의 속도가 어느 때보다 빠른 지금, 과연 우리는 어떤 욕망의 시대를 살고 있나. 삶의 모습과 태도를 둘러싼 세대 갈등이 어느 때보다 극심한 오늘, 돈과 화폐의 변천사에 대해 생각해 본다.
김지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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