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세계 5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은 세계 2위다. 올해 정부 R&D는 역대 최대인 35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9% 늘었다. 그러나 정부 R&D 지원에 따른 기업 매출 증가 효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최저 수준이다. 투자가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업화 절벽’ 현상이 문제다. 최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산업 R&D 혁신방안’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개발 이후 지원과정에 있다. 우수한 기술을 개발해도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 실증과 양산 단계의 자금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중소기업기술통계조사에 따르면 사업화 애로 1위가 ‘자금 부족’(18.4%)이며, 현장에서는 ‘규제로 제품 출시가 불확실하면 투자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개발에 성공해도 규제 허들로 제품 출시가 지연되는 현실은 기업의 의욕을 꺾는 요인이다. 규제 샌드박스 승인 건수는 늘었지만 법령 정비율은 26.3%에 불과하다. 특례 기간이 끝나도 규제는 그대로 남아 사업화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번 혁신방안에서 주목할 부분은 선제적 규제 해결 시스템이다. R&D 기획과 동시에 규제개선을 추진하는 ‘규제프리 R&D’ 신설은 기술개발과 규제 개선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진행 중인 R&D 과제를 대상으로 한 ‘R&D 규제해소 패스트트랙’ 도입, 규제 샌드박스 2.0의 법령 정비 의무화, 그리고 ‘30대 산업규제 혁신과제’ 집중 해소 계획도 구체적이다.
기술 사업화에서 가장 큰 애로는 실증·양산 단계의 자금 확보다. 2026~2028년 총 1조 원 규모의 사업화 특화 펀드 조성은 의미가 크다. 특히 수요 앵커기업 프로젝트 참여기업 등에 중점 투자하는 프로젝트 펀드 방식은 정책 방향성과 시장 수요를 동시에 반영할 수 있다. ‘포닥-신진연구자-스타 엔지니어’로 이어지는 전주기 양성 체계도 눈에 띈다. 매년 100명의 포닥 연구자가 산업 현장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10명의 국가리더급 기업연구자를 ‘스타 엔지니어’로 선정해 자유기획 R&D를 지원하는 것은 우수 인재의 산업 유입과 정착을 위한 유인책이 될 수 있다.
규제 완화와 혁신역량 강화는 R&D 성과를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완성시키는 핵심축이다. 이번 혁신방안은 구조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규제 부처와의 실질적 협력 체계 구축, 사업화 펀드의 신속한 집행이 필요하다. 특히 규제 완화는 제도 설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산업기술규제혁신단과 같은 전담 조직을 중심으로 R&D 관리 고경험자가 ‘1社 1마스터’ 방식으로 기업을 직접 찾아가 심층 면담하며 규제 애로를 발굴·해결하는 현장 밀착형 접근이 중요하다. R&D 혁신의 진정한 성과는 기업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측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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