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오 前 유엔사 군사정전위 수석대표, 예비역 육군 중장
자주국방 좋지만 과신은 금물
GFP 분석 결함 많고 비현실적
軍 ‘워게임’도 맹신해선 안 돼
北核까지 고려하면 황당 주장
적군도 모르고 아군도 모르면
국가안보는 심각한 위험 자초
미국이 국가방위전략(NDS)을 발표한 다음 날, 이재명 대통령은 사회관계망(SNS)을 통해 한국도 자주국방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1.4배나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5위의 군사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9월 26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방문했을 때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면서 “대한민국은 주한미군 전력을 제외하더라도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통령이 국군의 전투력이 진짜 세계 5위라고 믿는 것만 같아 이 인용된 자료의 실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민간 기업인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에서 지난 2006년 이후 매년 발표하는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내용이 그럴듯해 보여 국내 언론 매체들도 그대로 옮겨 보도하는 바람에 오류를 범하곤 한다. GFP는 미국에 있는 민간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정확한 소재지나 업종과 규모 등은 공개돼 있지 않아 확인할 수가 없다. 이 회사는 매년 세계 160여 국가의 병력과 장비 수 및 재정, 지리적 환경, 군수 지원 능력 등 60여 개 항을 자신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지수로 환산하고 이를 토대로 군사력의 순위를 매겨 그 결과를 발표한다.
문제는, 이곳의 분석은 단순히 양적 분석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실제 전투력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30년 전에 만든 함정이나 최근에 만든 함정이나 한 척인 경우에는 모두 똑같이 ‘1’로 계산된다. 그리고 북한과 같이 공개된 자료가 없는 국가는 자신들이 추정해서 평가하기 때문에 실상 이들의 자료는 공신력이 없어 전문가들은 인용하지 않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표하는 ‘팩트북(fact book)’에도 각국의 군사력 현황이 제시되고 있으나, 한 번도 지수로 환산하거나 순위를 매긴 적이 없다. 군사력이란, 단순히 인력과 장비의 수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복잡함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사기, 군기, 단결, 대적관, 국가관, 사생관, 의지, 훈련과 숙달의 정도, 국민적 지지, 국가가 가진 전쟁 지속 능력, 그리고 특히 군 통수권자의 지도력 등은 군사력을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도무지 측정하기 어려운 요소이기 때문이다.
GFP 자료 외에 일반에서 자주 오용(誤用)되는 것이 군의 워게임 결과이다. 한미연합군은 매년 두 차례 컴퓨터를 이용한 대규모 워게임을 한다. 실제 전장 상황을 모의하는 모델을 통해 도출되는 결과를 토대로 각급 부대 지휘관과 참모가 지휘 결심과 상황 조치를 훈련하는 것이다. 보이는 모습은 청소년들이 즐기는 컴퓨터 게임 같지만, 묘사의 정도는 매우 정교하며 실제 살상이 일어나지 않을 뿐 거의 실전을 방불케 한다. 국군이나 북한군 부대와 무기체계는 점수로 환산되는데, 단순한 수량뿐 아니라 장비의 성능 같은 질적 요소도 반영된다. 예를 들면 오래된 F-16 전투기가 ‘1’이라면 최신 F-35 전투기는 ‘5’가 되는 식이다.
하지만 이 모델 역시 한계가 있다. 모든 무기는 완벽하게 정비돼 있고 조작하는 장병들은 교범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100% 그대로 모의된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군에서는 워게임을 하고 난 뒤 어느 부대가 이기고 어느 부대가 졌다고 하면서 결과에 연연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그런데도 가끔은 이 워게임 결과를 인용하면서 재래식 무기로만 싸운다면 한미연합군은 3일 만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막고 북진을 시작할 수 있다는 등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에 이어 대통령이 또다시 국군 단독으로도 충분히 국가를 방위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아무래도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절대무기인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판에 그릇된 정보로 국군통수권자가 오도되는 일이 생겨서는 절대 안 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했다. 적에 대해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아군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국가안보가 위태로운 지경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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