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부 기자들의 ‘문화로운’ 설 연휴 나기
연휴는 결심의 시기다. 올해는 조금 덜 먹어야지, 밀렸던 드라마를 몰아 봐야지, 여행을 다녀와야지,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야지. 그 많은 다짐 가운데 과연 우리는 몇 개나 지켜 냈는가. 그렇다면 5일이라는 시간, 단 하나의 결심만 붙들어 보면 어떨까. 설 연휴를 맞아 문화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이것만큼은 꼭’이라는 마음으로 각자의 계획을 세웠다. 옛 추억을 더듬으며 시집을 꺼내 들거나, 다가올 여행을 미리 그려 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클래식 공부에 몰두할 예정인 우리들. 그 어느 때보다 개인적이고 또 문화적인 계획들을 소개한다.
“작년에 가장 재밌게 본 외계인 드라마 다시보기”
시골 호텔 직원으로 위장한 초능력 외계인이 나오는 일본 드라마 ‘핫 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를 다시 볼 생각. 지난해 가장 재밌게 본 시리즈. 당시엔 넷플릭스에 일주일에 한 번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 보느라 아쉬웠다. 주인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의 중년 남성. 사실 우주인인 그의 남다른 능력은 멀리뛰기, 높이뛰기, 빨리 뛰기 같은 것. 체육관 천장에 낀 농구공을 빼 주고,수험생이 입시장에 들어서기 전에 수험표도 가져다준다. 사소한 듯하지만 누군가의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구원자다.
능력을 쓰고 나면 몸이 약해져 온천에 몸을 담가야 하고, 직장에선 최소한으로 일하며 동료에게 일을 떠넘긴다. 이 촌스럽고 변변치 못한 주인공과 그에게 온갖 부탁을 하면서도 비밀은 지켜 주지 않는 의리 없는 주변인들의 행태가 웃기고, 그들이 친구가 돼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배경은 눈 덮인 후지(富士)산이 어디서나 보인다는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호텔도 실제 존재해 드라마 방영 후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정주행하다가 시즈오카행 티켓을 끊을지도
“여유가 만든 틈… 바흐와 경건하게 채우고파”
올해 설 연휴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곡을 들으며 경건하게 지내보려고 한다. 3월이 되자마자 존 엘리엇 가드너(3일)의 바흐 b단조 미사(BWV 232),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지휘자 김선아·5일)의 마태수난곡(BWV 244) 공연이 연달아 열리기에 미리 예습이 필요하다. b단조 미사는 바흐가 기존에 작곡한 작품들을 묶어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워 완성한 대미사다. 바흐는 실연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뿐인가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신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BWV 988)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들어야 한다. 참, 연휴엔 잠시 새벽 출퇴근의 고됨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나 갑자기 주어진 여유가 만든 틈으로 마음 한구석에 치워 두었던 상념과 슬픔이 치고 올라올 수도. 이럴 땐 바흐의 파사칼리아(BWV 582)를 들으려 한다. 이 오르간곡을 들으면서 잠시 명상하면 이 광활한 우주 속 나의 고민은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니.
“아버지 책장서 만난 시인의 시집 다시 펼쳐볼래”
시집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서가(愛書家)였던 아버지의 책장에서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꺼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시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히려 선명해지는 건 얇은 시집으로도 충만해졌던 마음이다. 어른들의 세계에 한 발을 내디딘 느낌,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세계로 빨려 드는 듯한 느낌이다. 나에게 시집에 대한 첫 기억을 안겨 준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볼 참이다. 내가 읽었던 시집은 절판됐으니, 시인이 가장 최근에 낸 ‘봄비를 맞다’(문학과지성사)를 읽어 볼까 한다. 1958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열여덟 권의 시집을 내며 한국 서정시의 거목으로 자리한 시인의 시집을 오랜만에 집어 들 때. 시인은 ‘시인의 말’에 “시집의 시 태반이 늙음의 바닥을 짚고 일어나 다시 링 위에 서는 (다시 눕혀진들 어떠리!) 한 인간의 기록”이라고 적었다. 시인의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 중학생이었던 내가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시인의 노정(路程)을 따라가 보려 한다.
“소문난 화제작, 이 한 권만큼은 꼭 읽어야지”
연휴가 되면 매번 회사에서 집으로 책 한 꾸러미를 안고 돌아온다. 이번 명절에는 집에 콕 박혀 기필코 이 책들을 다 읽어야지 다짐하면서. 그리고 늘 실패한다. 실은 겨우 한 권 정도 읽으면 다행일 수준이다.
그래서 올해 설에는 욕심을 접고 이 책 한 권에 집중해 볼까 한다. 최근 화제가 된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리프)다. 이름조차 낯선 신인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 읽어야 할 책들에 순번을 내준 사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버렸다. 소설은 저명한 괴테 연구가 도이치가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테 명언을 홍차 티백에서 발견한 데서 출발한다. 문장의 출처를 찾는 여정 속에 언어와 문학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이어진다. 문학적 사유에서 출발해 삶의 진리를 파헤치는 이 소설. 일본 소설이 국내에서 인기라곤 하지만 우리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는 어째서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을까. 늘 그렇듯 답은 책 안에 있겠지. 이번 연휴가 끝나고 그 이유를 찾아 돌아오겠다. 부디.
“英 웨스트엔드서 토니상 3관왕 연극 보고 올 것”
연휴 앞뒤로 며칠간의 휴가를 붙여 쓰면 ‘황금연휴’가 완성된다. 이번 휴일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를 끊었다. 목표는 하나. 공연의 본고장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마음껏 보고 오는 것이다. 가장 기대하는 작품은 ‘기묘한 이야기: 첫 번째 그림자(Stranger Things: The First Shadow)’. 세계적으로 흥행한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프리퀄(전작의 이야기보다 앞선 시기의 사건을 다루는 작품) 격인 작품이다. ‘기묘한 이야기’는 1980년대 미국 인디애나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10대 청소년들이 미스터리를 풀어 가는 SF물이다. 연극은 지난해 토니상 연극 부문에서 3관왕에 오른 작품이며, 현재 공연계에서 가장 핫한 작품 중 하나다. 국내에는 아직 들어오지 않은 만큼 영국 여행을 계획한 순간부터 “이 공연만은 봐야 돼”라는 투지마저 타올랐다. 영상 속 괴이한 생명체와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했는지가 관건인 작품이다.
“19세기 영국의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볼까”
설 연휴, 넷플릭스 ‘브리저튼’ 시리즈를 다시 ‘정주행’해 보려 한다. 얼마 전 공개한 4번째 시리즈가 1∼3시즌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19세기 영국, 브리저튼 가문 8남매의 이야기’라는 한 줄로 요약된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차용한 시즌4는 귀족 가문의 사생아인 소피 백과 브리저튼 가문의 차남인 베네딕트의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소피 역은 연극배우 손숙의 손녀인 한국계 호주 배우 하예린이 맡았다. ‘브리저튼’ 시리즈에서 아시아 배우가 주연을 맡은 건 처음이다. 계급 사회의 모순에 반기를 드는 소피와 그 틀 안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는 베네딕트의 상반된 모습이 흥미롭게 어우러진다. 특히 4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베네딕트가 소피를 향해 “나의 ○○이 되어 줘”라고 말할 때는 뒷목을 잡게 된다. 19세기 영국이 배경이지만 ‘브리저튼’ 시리즈는 한국의 막장극과 닮은 구석이 꽤 많다. 오는 26일, 시즌4의 5∼8부 공개를 앞두고 전 시리즈를 다시 보며 도파민을 분출해 보려 한다.
박동미 기자, 이민경 기자, 인지현 기자, 신재우 기자, 김유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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