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조경란의 설 이야기

한 평론가가 내 소설 세계를 ‘레시피의 상상력’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거의 모든 소설에 인물들이 밥을 먹거나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나와서일 텐데 속으로는 내 유년의 향수를 들켜 버린 듯해 좀 놀랐다. 그 시작은 동네 방앗간이고 그중에서도 결정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 맞다. 지금이야 슈퍼나 떡집에서 손쉽게 한 봉지 살 수 있는, 떡국 끓여 먹는 가래떡. 어려운 살림이었는데도 어머니는 설이 다가오면 일단 쌀부터 불렸다. 정성껏 불린 쌀이 맛있는 떡국의 기초라고 믿는 사람처럼. 어린 나는 맏딸로서 김장용 고무 대야에 담은 쌀을 머리에 이고 방앗간에 가는 어머니의 조수 역할로 따라갔다. 동생들 역시 쪼르르 내 뒤를 쫓아오고. 그래야 막 쪄 나온 가래떡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 이맘때의 첫 기억은 동네 아주머니들과 방앗간에 줄을 서선 우리 집 쌀이 가래떡이 돼 나오는, 경이롭게 느껴지던 그 풍경이다.

이제 부모는 노인이, 나는 중년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족’에도 변화가 생겼다. 동생들이 분가해 몇 해 동안은 설날 아침 부모와 나, 셋이 쓸쓸하게 차례를 지냈다. 막냇동생의 아이들을 우리 집에서 키우게 돼 설날 아침이 다시 시끌벅적해지고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십 년 동안, 설날에 조카들과 할아버지인 내 아버지가 거실에서 윷놀이하는 모습을 나는 설거지하다 말고 흘끗흘끗 보았다. 언젠가 저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고된 장보기와 음식 준비, 산더미 같은 설거지. 연휴가 시작될 때마다 혼자 여행을 가 버릴까 궁리해 봤어도 나는 설날만은 집에서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주방을 맡았다. 내일을 준비하듯 새해를 맞이하는 날. 동생 부부와 조카들이 오고 작은아버지와 숙모와 사촌들이 온다. 더러는 동생의 친구들까지. 앞치마를 두른 나는 집안을 분주히 오가다가도 무슨 좋은 걸 보듯 틈틈이 또 뒤돌아 본다.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을 가졌으나 설날만은 그걸 드러내지 않은 채 덕담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혼자 있고 싶고 안 보고 싶은 가족의 모습을 봐야 했던 명절도 있었다. 자, 규칙이 필요해! 동생들과 상의해 나는 결정했고 부모에게도 알렸다. 친인척이 모일 때 묻지 말아야 할 질문과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해. 그러자 서툴지만 이 가족 공동체는 ‘재결속’만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새 결속’을 느끼는 자리가 돼 가는 것 같다. 모두가 한 해의 시작을 집에서 여는 작은 잔치처럼 만들고 싶은 마음만은 같아서일까.

요 며칠 어머니는 장을 봐 오고 나는 음식을 준비하고 아버지는 대문을 닦는다. 스무 살 조카들은 윷을, 동생 부부는 술을, 사촌들은 청첩장이나 과일을 들고 올 것이다.

조카들을 키울 때 내가 한글과 말을 가르쳤는데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애들을 재우며 “달님도 이제 내일로 가는 거야”라고 말하자 “내일이 어딘데?”라고 물었을 때. 동화책을 읽다 온정이란 단어의 뜻을 알려 줄 때. 올 설엔 조카들과 떡국을 먹은 뒤 창문을 열고 같이 밖을 내다볼 요량이다. 온정이 뭔지 알지? 따뜻한 사랑이나 인정. 가족들 말고, 밖에 혹시 허기지거나 외로운 이웃이 없는지 둘러볼까? 이렇게 말하며. 이모로서 작가로서.

혼자 외롭고 혼자 힘든 사람 없이 모두에게 ‘황금연휴’가 되는 건 기적이 아닐지 모른다. 모두의 온정 속에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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