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번 돈을 다들 어디에 쓰고 있을까. 가계 자산이 늘고, 소비와 내수 회복으로 연결된다는 교과서적 답변은 말고, 지금 이 풍부한 유동성이 실제로 어느 길로 흐르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주택 자금조달계획서 자료를 보면, 최근 7개월간 서울 주택 구입에 쓰인 주식·채권 매각 대금은 약 2조4000억 원에 달했다. 특히 코스피가 4000선을 넘긴 달에는 해당 자금이 월 5000억 원을 웃돌았다. 강세장의 과실이 기업 투자나 생산적 금융으로 흘러가기보다, 주택 매수의 ‘우회 자금’으로 활용되는 흐름은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강력한 국정 동력을 확보한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정부의 구상은 참고 대상이다.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공약과 이후 정책 기조를 종합해 보면, 일본 정부는 단순한 주가 부양을 넘어 자금의 흐름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계에 잠들어 있는 2100조 엔 규모의 현금과 예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내 산업 성장으로 환류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우리 정부의 ‘생산적 금융’과 문제의식은 닮았으나 설계가 훨씬 촘촘해 보인다.

이미 개편을 거쳐 비과세 기간이 사실상 무기한으로 확대된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장기 투자 인프라로 안착시키고, 도쿄(東京)증권거래소를 중심으로 자본비용·기업가치 제고 요구를 지속하며 돈이 기업 내에 고여 있지 못하게 압박한다. 여기에 3년 연속 이어지는 고율 임금 인상 흐름까지 맞물려 증시의 과실을 가계 소득으로 강제 환류시킨다. 물론 다카이치 정부의 적극 재정 기조가 엔저 심화와 재정 건전성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도 상당하지만, 자본의 유입(NISA)부터 기업의 활용(밸류업), 가계로의 환류(임금)까지를 하나의 파이프로 묶어 유동성의 ‘샛길’을 차단하려는 그들의 고민만큼은 우리에게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관건은 ‘돈의 종착지’다. 주가 상승은 소비나 노후 자산의 완충재가 될 수도, 기업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근육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자산 가격만 다시 밀어 올리는 연료로 소모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자본시장의 체격이 커졌다고 실물경제의 체력이 자동으로 강화되지는 않는다. 코스피 5500은 축하의 숫자가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의 작동 구조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박정경 기자
박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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