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영국의 지성파 작가 줄리언 반스가 최근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는 지난 1월 여든 번째 생일 직후 신작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내놓으며 “소설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일을 멈추기로 했다. 슬픈 일이 아니라 하나의 긴 대화가 자연스럽게 마침표를 찍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그의 작별은 예순다섯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부커상을 받고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이어온 그였기에 더 특별하다. 창작의 예리함이 절정일 때 내려오는 냉철하고도 우아한 퇴장이다.

그의 마지막 소설은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 다시 사랑하고 또, 이별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시간과 기억, 죽음과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원제 ‘Departure’는 만남과 이별이 끝없이 반복되는 우리 삶의 은유이자 작가 자신의 작별 인사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이 모든 주제를 껴안고 있는 단어가 ‘관리(Management)’다. 혈액암을 앓는 화자 줄리언은 자신의 병에 대해 “나을 순 없지만 관리할 수 있다(Incurable but manageable)”고 말한다. 이는 실제로 작가가 2020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 반복해 언급해온 말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삶은 노화, 상실, 깨진 관계 등 ‘회복 불가능한 것들을 억지로 되돌리려는 싸움’이 아니라 ‘그 상태를 어떻게 견디고 정돈해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해 왔다. “희미해지는 기억, 나이, 죽음, 이별, 심지어 사랑까지, 삶의 많은 것이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것이 삶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에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소신대로 그는 소설에는 마침표를 찍지만 에세이와 비평을 통해 깊게 글을 써나가겠다고 했다.

최근 발표된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건강 수명은 69.89세(2022년 기준)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70세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줄리언 반스의 ‘관리’론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만성 질환은 늘어난 탓으로 축복받은 소수를 제외하고 짧지 않은 시간을 아프게 살아야 한다. 받아들이면서도 나아가는 기술이 필요하다. 게다가 계층에 따라 건강 수명의 격차는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늙어가는 개인과 나이 먹어가는 사회 모두에 이 기술이 절실하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