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레이건·처칠도 정치 철새 이력

배신보다 배신자 몰이가 치명적

지지층 결집, 내부 통제 쉬워져

 

정당 본질이 다양한 노선과 이견

갈등은 징계 아니라 관리의 대상

‘배신’을 정치 무기 삼지 말아야

국민의힘 지도부는 배신자 집합소다. 배신자끼리 서로 배신자라며 싸운다. 한동훈(이하 경칭 생략)은 윤석열을 배신했고, 장동혁은 한동훈을 배신했다. 윤석열 역시 문재인을 배신했다. 배현진은 홍준표를, 양향자와 조광한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을 배신했다. ‘코박홍(윤석열에게 코를 박은 홍준표)’ 홍준표도 탈영병이 된 뒤 “윤석열은 보수를 망친 용병”이라 칼질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경쟁자를 배신자로 몰아야 살아남는 생태계다. 박근혜가 11년 전 “배신의 정치를 반드시 심판해 달라”고 한 뒤 체질로 굳어졌다. ‘진박 감별사’와 ‘윤어게인’이 번갈아 설치며 ‘누가 누구를 배신했는가’만 따진다. 비전 경쟁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배신 경험이 많을수록 위로 올라가기 위해 상대방을 가혹하게 배신자로 몰아 숙청한다. 적당히 경고나 주의로 봐 주지 않는다. 제명과 축출이 다반사다. 소신은커녕 다들 눈치부터 살핀다.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들까 모두 전전긍긍한다.

근대 정치에서 ‘배신’은 꼭 부정적 의미만은 아니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원래 골수 민주당원이었다. 좌파의 지원으로 전미영화배우협회장에 당선됐고, 1948년엔 해리 트루먼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 아내 낸시를 만나면서 정치 성향이 바뀌었다. 작은 정부와 감세를 내걸며 1962년부터 공화당으로 돌아섰다. 그에게 배신은 흑역사가 아니다. “나는 민주당을 떠나지 않았다. 민주당이 나를 떠났다”고 당당하게 맞섰다. 레이건은 지금도 미 보수층과 공화당의 정신적 지주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1900년 보수당 의원으로 처음 당선됐다. 4년 뒤 보호무역주의 노선에 불만을 품고 자유당으로 옮겼다. 20년간 자유당에 몸담았지만, 정책이 노동당 쪽으로 기울자 다시 보수당으로 돌아온 정치 철새였다. “탈당과 복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념을 바꾸는 것은 힘들다.” 자신의 행보가 당이 아니라 신념에 따른 것임을 강조했다. 처칠은 유럽을 히틀러 손아귀에서 구해내 초당파적 영웅이 됐다.

문제는 배신이 아니라 ‘배신자 몰이’다. 정당도 어느 정도의 내부 규율은 필요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양한 노선과 이견이 존재해야 하는 조직이다. 정당한 문제 제기까지 배신으로 몰면 자유로운 토론이 위축되고 당내 민주주의는 사라진다. 지도부는 권위주의로 흐르고 충성 경쟁만 판친다.

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배신자 몰이는 달콤한 유혹이다. 단기적으로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분노를 자극해 대중 동원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당 내부에 공포와 긴장감을 불어넣어 내부 통제도 쉬워진다. 하지만 전국 선거는 당 바깥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묶어내는 쪽이 이긴다. 내부 숙청에만 매달리면 중도층이 등을 돌리고 인재 풀도 축소된다. 선거 때마다 외부 용병을 수혈하는 국민의힘은 심각한 말기 증상을 앓고 있다.

국민의힘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정의한 ‘가산국가(家産國家)’나 다름없다. 중세의 절대군주는 국가를 세습자산으로 여기고 영토와 국민을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했다. 사적인 충성심에 따라 관직을 거래 수단으로 활용했다. 경쟁자나 다른 의견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은혜를 베풀어 관직을 내려주었는데도 자신의 마음을 벗어나면 배신자로 몰아 처단했다. 박근혜와 윤석열도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공천을 주거나 관직에 등용했다. 마음에 안 들면 레이저 광선을 쏘거나 격노해 퇴출시켰다.

국민의힘은 배신자 몰이로 제 무덤을 파고 있다. 윤리위원회는 내부 권력투쟁의 숙청 기구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이준석을 내몰고 한동훈도 내쫓았다. 오세훈·배현진까지 배신자로 찍어낼 분위기다. 선진국 정당들은 당내 이견과 갈등을 ‘징계’하기보다 내부 기구를 통해 ‘관리’한다. 제명이나 출당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신 독립적 중재 기구인 ‘내부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내부 갈등을 해소한다. 국민의힘은 배신자를 찾기보다, 배신을 입에 올리는 사람부터 색출해 몰아내야 한다. 더는 ‘배신’이라는 단어를 정치 무기로 삼지 말아야 한다. 윤리를 잃어버린 윤리위도 바로 세워야 한다. 정당이 살아남는 길은 내부 숙청이 아니라 외연 확장에 있다. 보통 선거에 맞게 다양한 목소리를 품어야 대중정당이 될 수 있다.

이철호 논설고문
이철호 논설고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5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1
  • 화나요 2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