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 전체가 거대한 ‘예술 공동체’ 발리
건축가 제프리 윌크스가 구현한 고즈넉한 ‘만다파 리조트’
벽엔 풍경화·바깥은 계단식 논… 인간·신·자연 조화 중시
전통주 아락 칵테일 클래스 ‘트리 히타 카라나’ 철학체험
이슬람 국가서 힌두교 지켜낸 독특한 자유 엿볼 수 있어
400만 인구에 사원만 2만개… 그림 속 붓질마다 신앙 서려
감동·영감 의미하는 힌두 용어 ‘탁수’… 신에게 받는 선물 뜻
만다파는 소박한 전통 미감… 주메이라는 화려한 귀족 양식
‘발리 예술의 정수’ 루다나미술관엔 거장 렘파드의 흔적도
발리(인도네시아) = 박동미 기자
#1. 이 아름다운 그림은 어디서 왔을까
‘딩동’. 갑작스럽지만 그것은 선명한 울림이었다. 기다리던 택배 도착 알림일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머릿속에 울린다던, 그 종소리일까. 굳이 비교하자면 후자에 가깝다. 크고 확실한,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 그것은 우기의 발리에선 시도 때도 없다는 스콜(소나기)의 한가운데를 한 시간 달려 빗소리인지 차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음을 뚫고 도착한, 발리 우붓에 자리한 고즈넉한 리조트에서였다. 빌라 ‘10번’을 안내받았다. 비가 언제 왔냐는 듯, 하늘도 새도 바람도 잠들었다. 캄캄하다.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객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마주한 건 벽면을 가득 채운 풍경화였다. 산 아래 펼쳐진 계단식 논과 사원, 푸른 산과 풍요로운 열대 우림. 늦은 밤 도착해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도 가늠하지 못하는 낯설고 서툰 여행자에게, 지체하지 않고 말을 건다. “해가 뜨면 곧 이런 걸 보게 될 거야. 아름다운 광경을 직접 확인하게 될 거야. 여기에 깃든 의미가 궁금하지? 그건 그림보다 훨씬 근사할 텐데, 준비됐어?” 하고. 그러니까, 그것은 일종의 초대장이었다. 인간(논)과 신(사원), 그리고 자연(우림)의 조화를 추구하는 발리인의 일상으로 들어오라는, 그 ‘영적인 삶’에 참여하라는 손짓. 7시간 넘는 밤 비행으로 피곤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다. 침대에 몸을 누이며 생각한다. ‘이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호기심만큼 강력한 신호는 없다. 즉, ‘수락’이다. 그렇게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에서의 여정이 시작됐다.
#2. 눈 뜨니 펼쳐진 ‘논 뷰’… 어서 오세요, 발리인의 ‘영적인 삶’에
아침에 눈을 뜨니, 가장 먼저 보인 건 놀랍게도 ‘논’이었다. 발리 하면 언젠가부터 바다보다 먼저 떠올려지는 계단식 논 말이다. 35개 스위트와 25개 프라이빗 풀빌라로 이뤄진 만다파의 모든 객실은 모두 다른 전망을 연출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게 ‘논 뷰’다. 이 논에 물을 대는 발리만의 수로시스템 ‘수박(Subak)’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서는 아닐 것이다.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형태가 주는, 독특하고 기분 좋은 미감 때문이리라.
어제 낮엔 눈 내린 차가운 도시에 서 있었는데, 밤새 날아와 푸른 벼를 보고 있으니 호사다. 미세먼지와 탁한 공기, 노트북과 스마트폰 인공 빛에 혹사당한 내 눈. 녹색 많이 봐라. 한참을 멍하게 있어 본다. 논은 만다파가 직접 경작하고 관리한다. 사람들이 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걸 보니 사진 명소다.
울창한 정글에 숨은 듯 위치한 리조트, 그 둘레를 발리의 젖줄인 아융강이 끼고 흐른다. 동서남북 서로 다른 높이에 프런트, 레스토랑, 온수 풀, 키즈 클럽, 칵테일 바, 사원 등이 별채로 자리했고 독립된 풀빌라들이 그 안쪽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태다. 가장 높은 곳에 사원이 있다. 그리고 물(아융강)이 흐르고, 그 물은 인간의 삶이 시작되는 논으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만다파는 발리의 전통 마을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냈다. 만다파는 산스크리트어로 힌두교 사원 입구의 정자를 뜻한다. 제사를 준비하거나 춤·의식을 하는 공간이다. 관계자는 “발리 문화의 정신적 토대인 힌두교에서 유래한 말로, 신과 자연을 향해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어젯밤 초대장이 더욱 비범하게 느껴진다. 객실 벽화와 창밖 논을 번갈아 보다가, 마음의 빗장을 푼다. 이곳은 진짜 영혼의 휴식처구나. 이쯤 되니, 그림을 그린 이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발견하고 선택한 이마저 궁금하다. 만다파의 콘셉트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건 세계적인 건축가 제프리 윌크스라고 한다. 그는 발리 미술과 공간에 정통한 호주 출신 연구자다. 발리 회화를 본 순간, 머릿속에 종이 울릴만 했다.
#3. ‘트리 히타 카라나’… 발리에 흠뻑 빠지기 위한 주문
‘딩동’. 이것은 마음이 아닌 실제 귀를 때린 울림이었다. 이웃집(9호 빌라)에 머무는 리조트 관계자가 대문을 두드린다. 술을 마시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발리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수업이라고 했다. 그림의 출처를 찾고 싶다고 했는데, 술이라니. 집합 장소는 리조트 내 ‘앰버 바(Ambar Bar)’. 우리의 ‘소주’와 같은 발리 술 ‘아락(Arak)’을 사용한 칵테일 클래스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주제는 ‘트리 히타 카라나(Tri Hita Karana)’. 인간, 자연, 신과의 조화로운 삶을 의미하는 발리의 전통 철학이다.
오늘 수업은 이 바의 수석 믹솔로지스트 아디 산이 진행한다. 아락은 38도. 아디에 따르면, 발리 남자들은 저마다의 아락 칵테일 주조법을 익히고 있다. 또, 이 도수 높은 아락을 매일 마실 정도로 술에 강하다고 했다. 아, 발리 사람들도 ‘술 부심’이 있군. 한국으로 치면 일종의 ‘소맥(소주+맥주)’인가. 우리도 매일 그걸 마신다고 응수했다. 눈 앞엔 양조장이 다른 3가지 종류의 아락이 놓여있다. 한 모금씩 마시며 본연의 맛을 음미하고, 다른 재료들과 섞인 후의 ‘조화의 맛’을 느끼는 것이 과제다. 입맛을 다시는데, 어디선가 우아한 향이 퍼진다. 아디가 향을 피운다. 눈을 감자 기대도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에스프레소와 만난 아락, 라임에 탄산수를 넣은 아락, 그리고 또…. 고백하자면, 기억도 연기처럼 흩어졌다고밖에. 아락은 셌다. 칵테일은 맛있었고, 영롱했고, 꼴깍꼴깍 잘도 넘어갔다. 이걸 매일 마시는 발리 사람들, 강하다. 독한 술을 잘 마셔서가 아니라, 발리 고유의 문화를 굳건하게 잘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발리는 인도네시아의 섬 아닌가. 이슬람 국가에서 힌두교라는 이질적인 종교적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술을 금지하는 이슬람인데, 이렇게 술을 즐기고 자유롭다. 이날 클래스에 함께 참여한 마지 렌더 마케팅 부디렉터는 발리 남성과 결혼해 이주해 왔고, 이슬람교에서 힌두교로 개종했다. 마지 부디렉터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으니 참 잘한 선택”이라며 웃었다. 농담처럼 말했으나, 발리 사회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발리의 독자적인 신앙은 예술, 건축, 공동체 구조까지 독립적인 문명권을 형성시켰죠. 핵심은 ‘조화’예요. 그림을 그리고 볼 때도, 술을 만들고 마실 때도, 그 기본 정신은 똑같습니다.” 다시 한 번 주문을 왼다. ‘트리 히타 카라나’. 발리 예술 여행이, 시각적 감상을 넘어 몰입형 문화 체험으로 확장된다. 그러니 꼭, 발리에 가면 아락을 마셔라. ‘앰버’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전 세계 바를 종횡무진하는 아디가, 앰버에 머무는 때를 고대하며.
#4. 당신은 예술 공동체 안에 있습니다
술에 취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조화로운’ 아락 칵테일을 잔뜩 마시고 돌아오는 길은 ‘예술’이었다. 동네 산책처럼 한번 이 마을을 걸어서 구경하기로 했다. 레스토랑 입구, 중앙 로비 화장실 복도에도 그림이 걸려있다. 객실에서 본 것과 비슷한 풍이다. 색칠 없이 연필만으로 정교하게 그린 그림도 꽤 보인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춤을 추고 제사를 지낸다. 숲엔 새들이 날고, 나무엔 열매가 풍성하고, 꽃들이 만발했다. 다른 객실엔 어떤 그림이 있을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날 25개 풀빌라는 만실이지만, 스위트는 몇 군데 비었다며 관계자가 살짝 문을 열어주었다.
단 한 점도 같은 그림이 없다. 그런데 분위기는 일관된다. 산과 사원, 논과 사람 등 등장 요소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흥미로웠다. 관계자는 리조트 내 대부분의 그림이 인근 마을 ‘켈리키(Keliki)’ 지역의 공방에서 제작된다고 했다. 즉, 먼 곳에서 탄소를 배출하며 이동해 오는 것이 아니라, 지척에 존재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켈리키 양식’의 특징은 농경과 힌두교 신화를 주제로 다루고, 기술적으로는 극도로 세밀하다. 즉, 단순히 자연, 사람, 사원을 옮긴 것이 아니라, 삶과 신앙이 응축된 영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발현한 것이다. 덧붙여, 이것은 만다파가 켈리키 지역 예술가들의 최대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호텔이 지역 장인의 작품을 사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은 발리의 고급 리조트들에서 최근 보이는 공통된 경향이다. 이는 ‘지속 가능한 여행’과 ‘현지 문화 보존’에 가치를 두는 21세기 현대인의 ‘바람직한’ 허세를 건드린다. “당신은 지금 상생 추구의 현장, 거대한 예술 공동체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
발리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억할 이름이 있다. 우붓의 전설 같은 존재, 발리 현대 예술의 기틀을 마련한 거장 ‘이 구스티 뇨만 렘파드’(?∼1978)다. 건축, 조각, 회화 등 다방면에 천재적인 면모를 보였던 그는 116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사라스와티 사원을 비롯해 우붓의 유명한 건축물엔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또, 그의 제자 ‘뇨만 카야’는 ‘켈리키 양식’의 창시자다. 크고 비싼 그림 대신 여행자들이 쉽게 소장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그림 스타일을 개발, 켈리키 마을 전체를 예술 마을로 변모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두 사람으로 인해 발리 회화는 ‘종교적 도구’뿐만 아니라 ‘개인의 창의성’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가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5. 발리 예술의 정수 루다나미술관
“남들이 월급으로 삼성, LG 전자제품 살 때, 저는 땅을 한 평 두 평 사 모았지요. 우붓 땅이 한 평에 1달러 할 때였어요.” 우붓 시내 동남쪽에 위치한 루다나미술관. 설립자 뇨만 루다나(78)의 말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미술관과 갤러리를 보유한 재력의 근원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솔깃한 대답이 나왔다. 루다나미술관을 방문한 건, 그림에 유독 관심을 보인 투숙객을 위한 만다파 측의 추천 덕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살짝 자신감이 붙어서였다. 켈리키 양식도 알았고, 발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는 렘파드에 대해서도 공부했으니, 깊이를 더해 본다는 차원. 적당한 가격에 그림도 한 점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 게다가 리조트에서 제공해준 1970년대산 폭스바겐 빈티지는 멋지다. 어디든 가야지. 오렌지색 오픈카는 어떻게 작동할까 싶을 만큼 계기판도 단출해 더 매력적이다.
이 미술관을 운영하는 루다나 가문은 대대로 우붓의 부유층으로, 발리의 가장 강력한 예술 후원가를 자임해왔다. 1995년 미술관을 설립한 뇨만 루다나는 인도네시아 상원 의원 출신, 현 관장인 장남 푸투 수파드마 루다나도 인도네시아 박물관 협회장을 지내고 현재 발리 지역 의원이다. 2대에 걸쳐 발리의 문화예술 부흥에 기여하고 있는 것.
루다나미술관은 발리 현지의 예술가는 물론, 외국에서 온 작가들까지 후원하는데,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 위주로 소장해 현재는 500여 점에 이른다. 우붓엔 개성 넘치고 세련된 갤러리들이 넘치지만, 발리 예술의 역사를 알고 그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단연 이곳이다. 1840년대에 제작된 희귀한 발리 달력, 켈리키 양식의 뿌리를 알 수 있는 렘파드의 선묘화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피카소’ 아판디의 걸작과 발리에 정착해 활동한 외국 작가 안토니오 블랑코의 초기 작품도 볼 수 있다. 블랑코는 ‘발리의 살바도르 달리’라 불렸다.
국보급 예술품이 즐비한 미술관뿐만 아니라, 건너편 갤러리도 놓치지 말자. 수천 점의 동시대 미술품을 판매한다. 미술관과 갤러리 사이엔 루다나 가족의 웅장한 사택이 있고, 그 뒤로는 넓은 정원과 논이 펼쳐진다. 그림 감상 후 산책까지 가능한 ‘루다나 월드’는 최근 여러 여행서에서도 추천하는 코스다.
#6. ‘신들의 섬’ 발리의 사치는 ‘탁수’
발리의 인구는 약 400만 명. 사원은 2만여 개다. 섬 전체가 거대한 하나의 사원. 그래서 ‘신들의 섬’일까. 그보다는 발리인들의 붓질 위에, 발리 술의 조화 속에, 리조트의 건축 철학에까지, ‘신’이 있어서다. 발리 여성들은 매일 새벽 4∼5시면 일어나 신에게 바치는 공물인 ‘치낭 사리’를 만든다. 작은 꽃바구니처럼 생긴 치낭 사리는, 발리 주택가 길목과 호텔 입구에서 자주 발견돼 발리 여행자라면 누구나 익숙하다. 또, 섬에선 1년 내내 화려한 힌두 의식을 비롯해 종교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발리인들이 갈망하는 건 뭘까.
“발리인들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깊은 감동,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 즉 ‘탁수(Taksu)’를 경험하며 삽니다.” 스콜이 막 지나간 만다파 내 사원 앞에서 만난 한 직원이 말을 건다. 탁수는 힌두교의 핵심 에너지로, 우리말로 옮기면 ‘신성한 영감’ ‘영적인 카리스마’에 가깝다. 발리인들은 ‘탁수’를 신으로부터 받는 선물로, 영혼이 누리는 최고의 사치로 여긴다고 했다. “우린 섬에 발을 들인 모든 이들이 이를 선물 받기를 진심으로 기도해요.” 아, 그거라면 이미 아락을 마신 날 경험했다. 말하려는 찰나, 후드득, 다시 비가 떨어져 대화가 끊긴다.
문득 옛 영화가 떠오른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녀의 종착지는 발리였고, 거기서 사랑에 빠진다. 그것이 그녀의 ‘탁수’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탁수는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받는 사람 각자의 것. 아락에 취한 게 ‘탁수’라면 좀 멋없지. 택시를 불러 우붓을 벗어나본다.
#7. 나만의 ‘탁수’를 찾아서
내내 우붓의 산과 강, 그림만 보다가 발리섬 남부 해변으로 간다. 서퍼들이 몰려드는, 아름다운 해안 절벽이 있는 울루와투 지역의 ‘주메이라 발리’. 이 리조트는 발리 힌두교의 황금기였던 마자파힛 제국의 궁전을 재해석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본래 16세기 자바 섬에 살던 마자파힛 제국의 귀족, 예술가, 사제들은 이슬람 세력이 확장하자 발리로 이주한다. 토착 문화와 마자파힛 왕조가 만나 지금의 ‘발리 힌두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된 것. 만다파가 소박하고 경건한 발리 전통 마을을 재현했다면, 주메이라는 화려하고 세련된 왕족, 귀족 예술의 미감을 드러낸다. 건축과 미술에 관심 있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주메이라를 ‘관람’하길 권한다. 발리의 골동품과 현대미술 작품 150여 점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빼어난 미술관처럼 꾸려진 리조트를 둘러보는 거다. ‘탁수’ 넘치는 ‘아트 투어’다.
“마침 전시도 열리고 있어요. 꼭 보고 가세요.” 경쟁 리조트에서 머무는 손님을 환대하는 주메이라 발리의 마데 난다 마케팅 디렉터다. 우붓의 축축한 우림을 벗어나 쨍한 햇살과 바다 빛을 머금은 주메이라 중앙 로비에 들어선다. 카마산 회화들이 걸려있다. 천연 재료에서 온 흙색, 무채색을 입힌 그림들이 발리 신화의 장면들을 품고 있다. 카마산 회화는 발리 동부 카마산 마을에서 발달한 양식으로, 과거 이곳에 마자파힛 왕궁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만다파가 내세우는 켈리키 양식과도 역시 대조적이다. 특히, 이번 전시 참여 작가 5인은 2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달리한다. 고전 조형 언어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재해석을 담은 작품들이 카마산 회화의 연속성과 현재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마데 디렉터는 “발리 예술이 과거에 머무는 것처럼 인식되곤 하는데,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문화적 유산임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자파힛 왕조의 유산이 서린 건축미, 카마산 회화에서 이국적 정취를 만끽했다면,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또 다른 리조트 물리아 발리로 간다. 주메이라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콘셉트로 예술적 감흥을 주는 곳이다. 로비와 객실, 레스토랑, 수영장 등 곳곳에서 다양한 예술 작품을 발견하고, 그것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를 곱씹는 재미는 물리아만의 것이다.
물리아 발리 수영장의 거대한 여인석상은 투숙객들이 1순위로 꼽는 포토 스폿이다. 높이 6m에 달하는 이 석상들은 1기에 1억 원에 달한다고 하는데 물을 관장하는 발리의 신을 모티브로 제작됐으며, 각기 연꽃이나 물 바구니 등 서로 다른 상징물을 들고 서 있다. 이는 헌신과 희생을 미덕으로 여겨 온 발리 여성들의 전통적인 삶이 투영됐다고 한다.
테이블8과 더 카페 등 레스토랑에서 발견되는 황중양 작가의 작품은 미술애호가들의 이목을 끌 것이다. 물리아가 소장한 그의 대형 코끼리 그림과 서태후 시리즈 등은 압도적이다. 평화롭지만 높은 몰입도로, 발길을 멈추게 한다.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주로 활동하는 작가는 전통적인 주제를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걸로 유명하다. 거울을 사용한 그의 조형 작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식당 구석구석을 눈여겨보자.
투숙하게 된다면, 객실에 비치된 중국 작가 위치핑의 작품에 빠져들 것이다. 위치핑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눈 감은 승려’ 시리즈의 판화가 전 객실에 걸려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엎드려서, 혹은 의자에 앉아서 평온하게 자고 있는 승려가 등장하는데, 이는 그 방에 묵는 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부적처럼 느껴진다. 이때, 그림은 장식이나 감상의 대상을 넘어, 더할 나위 없는 휴식의 동반자가 된다.
■ 지속가능한 파인 다이닝
신, 자연, 사람의 조화를 추구하는 발리의 정체성은 음식에서도 드러난다.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쿠부는 발리 농부의 땀방울이 ‘예술’이 되는 곳. 맛, 모양,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태도와 철학까지 말이다. ‘곡물 창고’라는 뜻의 쿠부는 우붓 지역 제철 식재료만을 고집한다. 즉,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식당. 아융강을 내려다보며 셰프 에카가 차려주는 10가지 코스를 즐겨보자. 발리가 고향인 에카의 요리를 마주하고 맛보다 보면 발리 땅과, 이 땅을 일궈온 모두가 경이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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