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주식 폭락에 겪는 스트레스

군인들의 트라우마와 유사

 

경제위기가 생존 위협 돌변

합리적 의사결정 못하게 돼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 말고

경제 근육 키우는 기회 삼길

무언가에 재능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참 부럽다. 대화·노래·요리·운동… 내게 없는 이 숱한 재능들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난 적도 있다. 내게 없는 능력, 남의 떡이 부러운 건, 내가 가진 재능은 내겐 너무나도 당연해, 그게 뭔지 스스로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이 잘하는 건 나와 달라 눈에 금방 들어오고, 그저 부럽고, 때론 박탈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다 다짐한다. 저 재능은 저 사람이 타고 태어난 우주의 기운이다, 내게 없는 재능을 좇아 가랑이 찢어지지 말자. 숱하게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나이가 들어도 쉽게 포기되지 않는 부러운 능력이 있다. 바로 ‘돈 재능’이다.

“지나가다가 동네가 괜찮길래 조금 무리해 산 땅이 이렇게나….” “주식 하나도 모르는데, 그냥 돈이 조금 생겨서 사봤는데 이렇게나….” 별거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박을 내는 그들의 우주 기운은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냥’은커녕 ‘조금’은커녕, 아무리 노력해도 내게는 오히려 반대 상황만 일어나는 이 불합리에 어찌 허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코스피가 2월 들어 5500을 훌쩍 넘어섰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며 축제에 달뜬 분위기로 가득하다. 친구나 친척, 회사 동료, 지인의 지인 이야기 속에 누가 어떻게 대박을 냈는지에 관한 성공 스토리가 넘쳐난다.

하지만 모두가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축제의 ‘빨간 그래프’가 주식을 하는 사람이나 하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의 마음에 빨간 경고등을 켜는 부정적 자극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주식 창은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도파민 수치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박탈감을 자극하는 우울감의 수치로 작용하고, 도파민의 수혜자 역시 그래프가 꺾일 때마다 패배감과 우울감의 늪으로 빠져드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빨간 그래프의 황홀함에 넋 놓고 취해만 있을 수는 없다. 언제 꺾일지 모를 하락장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자산의 폭락은 단순히 돈이 줄어드는 사건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 본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공격받는 ‘심리적 재난’ 상황, 바로 ‘금융외상(Financial Trauma)’ 상태다. 미국 재무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실제 금융 문제를 겪은 사람들의 뇌와 신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동일한 심리적·생물학적 상태로, 전쟁터의 군인이 겪는 스트레스 반응과 유사한 트라우마를 가진다. 미국인의 20∼30% 정도가 PTSD 진단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의 금융외상을 겪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재난 상황에서 감정이 이성을 압도해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 현상을 일으킨다. 대니얼 골먼이 말한 것처럼, 비행기가 납치당하면 조종사가 조종권을 잃듯, 편도체가 활성화돼 뇌의 합리적 사고 센터인 전두엽이 통제권을 잃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외부 자극이 전두엽으로 가기 전 편도체로 먼저 전달되면서, 감정에 즉각 반응하는 편도체가 위협 상황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강한 분노·공포·불안과 같은 강렬한 감정 반응이 일어난다. 0.1초 안팎의 찰나에 말이다. 또한, 갑자기 나타난 포식자 앞에 얼어붙은 것처럼 ‘몸이 굳어 버리는 반응’(Freeze)이 일어난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계획하여 판단하게 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다 보니 평소라면 하지 않을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거나, 오히려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하고 얼어붙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끝난 뒤 이성이 돌아오면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자신의 행동을 뒤늦게 후회한다.

즉, 우리 뇌는 경제적 위기를 물리적 생명의 위협과 똑같이 처리해 ‘폭락장, 부채 고지서, 잔고 부족’ 등과 같은 문제를, 맹수에게 쫓기는 것과 같은 생존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곧, ‘편도체 납치’ 상태에 빠지게 한다. 뇌 전두엽의 기능을 마비시켜 합리적인 의사결정,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충동 조절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잘못된 금융 결정을 내리고, 이것이 다시 스트레스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은행 잔고를 확인하거나 고지서를 열어보지 않는 회피 행위가 점차 늘어나거나, 돈 이야기만 나오면 심박수가 올라가고 극도로 예민해져 과한 민감함을 보이게 된다면 금융외상의 초기 단계를 의심해볼 수 있다. 생존의 위협으로 변질된 금융외상 상태가 안정적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마저 눌러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코스피가 치솟고, 주변에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초라한 내 잔고를 들여다보는 일은 스트레스다. 왜 나만 이렇게 안 풀릴까, 운이 없는 걸까, 능력이 없는 걸까? 자신을 경제적 무능력자로 낙인 찍어 자존감은 떨어지고 우울감은 커진다. 하지만 빨간 그래프에서 조금만 거리를 두고 나를 살펴보자. 돈 재능 대신 다른 재능을 가진 덕분에 이룬 지금의 나, 파격적인 도파민 대신 소소한 행복 도파민으로 채워가는 일상이 보일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하락장에서도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심리적 손절매’ 능력을 키워두자. 주식 창의 빨갛고 파란 그래프를,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처럼 내 근간을 흔드는 자극제로 사용할지, 경제 근육을 키우는 든든한 동반자로 삼을지는 마음먹기 나름일 테니.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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