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하나, 둘, 셋, 뛰어.’ 밀라노 설원에 울려 퍼진 블랙핑크의 ‘뛰어’는 한 편의 겨울 동화였다. 시간, 공간, 인간이 합을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헤아린다면 그 눈, 그 얼음의 재료는 필경 땀과 눈물이 될 것이다. 그러한지 선수들의 마음을 노래가 읽어준다. ‘내가 흘린 눈물들은 얼어붙었지.’(All my tears turn to ice) ‘최고로 달콤한 탈출이란 그런 거야.’(That’s the sweetest escape)
50년 전에도 뛰는 사람이 있었다. ‘사라져 버려라. 슬픈 이야기 흩어져 버려라. 뛰는 내 발길.’(최백호 ‘뛰어’ 1976) 데뷔 50주년 인터뷰에서 낭만 가객 최백호(1950년생)는 과거 대신 미래를 골랐다. “아흔 살에 부를 노래 제목은 ‘박수’인데 대충 이런 내용이 될 겁니다. 나 죽거든 (울음 대신) 박수를 쳐주오. 삶의 시간들 칭찬해주오. 행복했으므로.”
시간은 주어에 따라 다르게 움직인다. ‘누구는 뛰어가고 누구는 기어간다.’(Some people run some people crawl) 가수는 글렌 캠벨(1936∼2017), 노래 제목은 ‘Time’(1969). 한땐 갈라서 해석했다. ‘Some people never die some never live.’(누구는 불멸의 삶인데 다른 누구는 불행한 삶) 지금은 다르다. ‘죽어도 산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다.’
죽어도 산 사람 리스트에 소설가 최인호(1945∼2013)가 있다. 배우 안성기의 초기 대표작들(적도의 꽃,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겨울 나그네)이 모조리 최인호 원작·각본이었으니 대단하지 아니한가.
“뛰어.” 기세등등 최인호는 충무로까지 달렸다. 자신의 원작 소설 ‘걷지 말고 뛰어라’(1976)를 시나리오로 옮기고 감독까지 맡았다.
오늘 음악동네 면면이 다채로운데 피날레는 한강 작가다. 출판사(샘터) 근무 시절 찻잔을 옮기다 산산조각 깨뜨린 적이 있는데 신입직원 한강은 자리에 주저앉아 조용히 되뇌었다. “아름답던 게 깨어졌구나.”(남다르긴 하다) 그걸 지켜본 최인호가 위로인지 격려인지 나중에 이런 말을 했다. “많이 힘드니.”
한강이 최인호 추도사를 썼는데 제목이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2013)다. 투병 중 위문 온 후배 작가와 해변을 걸으며 진심을 전한 이 장면은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
설원엔 눈이 가득한데 마음에 쌓인 눈을 녹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아름다움을 부수고 있다. 산 자들아. 체온이 남아있을 때 사이좋게 노래하자. ‘눈 감고 하나, 둘, 셋 뛰어.’(블랙핑크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