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동남아 K팝 팬덤 분노와 항의

한국 제품 불매 시블링스 연대

언론들은 한국 인종차별 지적

 

성공이 가져온 문화 우월주의

K팝 혼종성 정신 잊지 말아야

진짜 문화적인가 되물어볼 때

방탄소년단(BTS)이 돌아온다. 다음 달 광화문에서 열리는 컴백 공연은 ‘2026년 최대 음악 이벤트’ ‘현대 팝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세계 언론의 환호를 받으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생중계된다. 동시 접속 대기자가 10만이 넘는 예매 전쟁을 일으킨 이날 공연은 K팝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임을 재확인시켜줄 것이다. 하지만 이 뜨거운 열기 뒤에 K콘텐츠의 기반을 흔들 수도 있는, 결코 작지 않은 균열이 감지된다. 동남아 팬들의 연대, #SEAblings(시블링스)이다.

사태는 지난달 보이그룹 데이식스의 쿠알라룸푸르 공연에서 시작됐다. 한국 팬사이트 관계자가 현지에서 금지된 프로급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 발단이었다. ‘왜 말레이시아 팬은 안 되고 한국 팬만 예외냐’는 공정성 문제가 SNS로 확산했고, 일부 한국 네티즌은 “동남아는 매너가 없다” “우리 덕에 경제가 돌아간다”는 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말레이시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베트남 이용자들이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와 형제자매(siblings)를 합친 조어인 #SEAblings 해시태그 아래 뭉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국의 성형 문화, 자살 등을 맞조롱하며, 각국 SNS 타임라인을 뒤덮었다.

이는 단순한 팬덤의 감정싸움이 아니다. 이들은 한국 여행이나 유학 중 겪은 차별, 한국 콘텐츠 왜곡 등을 공유하며, K팝은 좋아하지만, 인종차별은 거부한다고 했다. 스트리밍 중단과 한국 제품 보이콧으로까지 이어졌다. 요컨대 누적된 차별에 대한 폭발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카르타 포스트는 사설에서 ‘한국의 문화적 우월감과 인종차별이 더는 비용 없이 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문 사설로 다뤄질 정도라면 팬들끼리 싸움으로 덮고 갈 수 없다.

이 시점에서 K콘텐츠가 어떻게 세계를 매료시켰고,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본다. 여기에는 지난 10여 년 사이, 서구 문화의 백인 남성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혼종성을 추구하는 문화적 대전환이 중요한 배경이 됐다.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있던 K콘텐츠는 이 같은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가장 새로운 얼굴로 급부상했다. 변방의 정서가 보편적 공감을 얻어낸, 말 그대로 ‘언더독의 승리’였다.

그런데 시블링스 사태에서 보듯이 K팝이 밖으로 영향력을 확대할수록 한편에서 폐쇄적인 ‘문화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서구 열강이 휘둘렀던 과거 문화 패권을 복제해 대상을 동남아로 바꾼 셈이다. 멕시코 대통령이 BTS 공연 횟수를 늘려 달라는 외교 서한을 보내고, 유튜브나 OTT에서 쏟아지는 ‘K’를 향한 열광과 추앙 세례를 맞으며 한류가 동아시아에선 문화 제국주의로 인식돼 역풍을 맞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무시되고 있다. 이 자체가 차별이다.

이 과정에서 낮은 안전 기준과 기획사의 미숙한 운영을 비판하는 현지 팬들은 배은망덕한 관객이 되고, 이 연장 선상에서 K팝 그룹의 외국인 멤버들을 향한 국적 공격이 벌어진다. 이에 현지 팬들 사이에서 ‘콘텐츠 이익은 한국이 가져가고, 위험과 비용은 우리가 떠안는다’는 분노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시블링스 논쟁 와중에 한 지자체장이 농촌 인구 문제를 거론하며 스리랑카나 베트남 여성을 ‘수입’하자고 발언해 베트남 대사관의 항의를 받은 사태는 우리 사회 전반의 낮은 문화적 감수성을 드러냈다.

K팝은 이제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다. 서울과 뉴욕, 파리뿐 아니라 방콕, 자카르타, 마닐라의 감정과 언어가 섞여 재구성되는 ‘다중 중심 문화’가 됐다. 문화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은 창작자만큼이나 팬덤이 쥐고 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우월주의는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가장 빠른 길이다.

외국에서의 성공을 민족적 우월성으로 치환하는 ‘국뽕’은 위험하다. 정부는 K콘텐츠를 전략 산업으로 삼아 300조 원 시장과 글로벌 빅5 진입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목표에 걸맞은 ‘진짜 문화 국가’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콘텐츠 단계에서부터 다문화적 감수성을 반영하고, 업계 내부에 인권과 다양성을 점검하는 장치를 두는 일부터 상대국과 다양한 문화 교류를 이어가는 일까지 필요하다. 그래야만 글로벌 빅5라는 목표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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