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후의 서재
‘궤도에 올랐다’는 말이 있다. 취업, 승진, 결혼, 내 집 마련, 더 나아가 명예와 권력 등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 조건에 이르기 위한 궤도를 탔다는 뜻이다. 그 궤도에 오르지 못한 채 낮은 곳을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 조은영 작가의 네이버 웹툰 ‘저궤도 인간’의 주인공 주재열이 그렇다.
문예창작과의 빛나는 신예였던 그는 가난, 인맥 부재 등의 현실에 짓눌려 서서히 가라앉았다. 물류 알바와 노래방 알바를 전전하며 시간 강사직을 버텨냈지만, 유명 작가가 된 동기에게 마지막 기회였던 교수 자리마저 빼앗긴다. 바닥 없는 물에서 아무리 헤엄쳐도 제자리인 삶, 내려다보면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이 있다.
그에게 이동재라는 후배가 있었다. 거의 무연고자에 가까운, 주인공보다 더한 흙수저. 만 원 이만 원도 아쉬운 처지지만 대학 시절 문학의 꿈을 함께 나눴던 후배를 외면할 수 없어 한 푼 두 푼 빌려주곤 했다. 이동재는 굶어가면서도 강박적으로 작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반지하방에서 급사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원고만 남긴 채.
주재열은 이 원고를 출판사에 소개하려다 자신의 작품으로 오해받게 되고, 그 오해를 자의 반 타의 반 상황 속에서 교정하지 못한다. 작품은 탁월했고, 오랫동안 흠모하던 편집자 장예주와의 접점도 생긴다. 소위 ‘궤도에 오를’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고통스럽다. “몸은 낮은 곳을 기어 다녀도 영혼은 아득바득 높은 곳에 앉혀두는 것, 나에게 그것은 품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라는 그의 독백처럼, 모든 것이 낮고 부족했기에 양심만은 지켜야 살아갈 수 있었던 인간이, 스스로 그 마지막 양심을 저버린 것이다.
이 서사를 떠받치는 작화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 거친 선과 절제된 채색은 주재열이 사는 세계와 좁은 자취방, 칙칙한 강의실, 어둑한 술집의 온도와 습기를 정확히 담아낸다. 낮은 채도의 색감은 저궤도에 머무는 인간들의 체감 온도 그 자체다. 모든 대사와 내레이션을 이루는 문장들도 탁월하다. 문예창작과의 합평 장면에서 오가는 비평, 주재열의 독백들, 군상들이 내뱉는 리얼리즘적 대사까지 이 웹툰은 문학을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학이 되고 있다. 거기에 이를 웹툰만의 스토리텔링으로 시각화해 내는 연출마저 완벽하다.
이 작품의 구조는 맥베스의 몰락을 닮았다. 빛나는 장예주 앞에서 그는 자신의 추악함을 더 선명히 비춰보게 될 것이고, 궤도에 가까워질수록 더 깊이 타락할 것이다. 저궤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른 대가가 결국 그를 궤도 밖으로 내던질 날이 두렵다. 깊고 섬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운 드라마로서 추천하고 싶다.
전혜정 청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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