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책
사뮈엘의 일기
에밀리 트롱슈 글·그림│이재원 옮김│길벗어린이
내가 열두 살에 쓴 일기장은 오래전 버렸다. 부끄러움, 수치심, 자기혐오…. 반갑지 않은 감정이 올라오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일기장에 토했다. 어느 날 사촌 동생이 말했다. “언니, 엄마가 언니 일기장에 왜 이렇게 욕이 많냬.” 이모가 내 일기를 읽었다는 걸 안 뒤로 쓰기를 멈췄다.
‘사뮈엘’은 프랑스의 5학년이다. 동그란 얼굴에 작은 눈동자, 앞머리로 이마를 덮고 있는 헤어스타일…. 딱히 특별하거나 특출나 보이지 않는다. 특징은 있다. 일기를 꾸준히 쓴다. 일기장엔 ‘쥘리’ 이야기로 가득하다. 문제는 사뮈엘 말고도 많은 남자애들이 쥘리를 좋아한다는 거다. 쥘리의 선택은 사뮈엘 혼자 라이벌이라고 의식하는 ‘디미트리’다. 그날 사뮈엘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는다. “나는 못생겼고 하찮다.”
중학교 입학 후 사뮈엘의 세계는 한층 넓어진다. 상급생과 맞서고, 형들과 밤의 축제에 섞이고, 학교를 빠진다. 사랑에 실패한다. 감정이 요동치고 눈물이 흐른다. “금방 클 거야!” 외치던 사뮈엘은 언젠가부터 거울을 보며 “자라는 게 싫어”라고 중얼거린다. 크는 게 그저 신나는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아 버린 걸까. 조금이라도 심각해질 것 같을 땐 냅다 춤을 춘다. 애써 어린이로 남으려는 몸부림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년은 어른이 되고야 말 것이다.
나는 꽤 최근에야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예전과 다르게 건조하고 덤덤하다. 삶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서다. 언젠간 사뮈엘도 영 재미없는 일기장을 갖게 되겠지. 부디 그때까진 솔직하고 다채롭게 채워 주길. 아무도 일기장을 훔쳐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328쪽, 1만7000원.
김다노 동화작가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