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핏자가 들어가는 건 핏국밖에 안 먹는다.” 30여 년 전의 국어학 전공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이런 말장난이 통했다. 3월에 갓 입학한 대학원 신입생이 점심시간에 피자를 연구실로 주문해서 먹자는 제안을 한다. 그런데 경주 토박이 남자 선배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이리 대답한다. 피자가 귀하고도 비쌌던 시절이니 아직 구경도 못 해 본 선배였지만 선짓국을 가리키는 ‘핏국’으로 ‘피자’와 운을 맞춰 재치 있게 대답했으니 웃음이 날 법도 하다.

오늘날에는 골목마다 피자 가게가 있을 정도이지만 피자가 대중화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음식이지만 1950년대 미군을 통해서 유입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야 ‘피자 오두막집’이 개점하고 1990년대에 들어 ‘도미노’와 ‘미스터’가 간판을 내걸면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배달 주문으로는 주로 미국식 피자를 먹었지만 ‘정통’을 내세우는 식당을 직접 방문하면 이탈리아식 피자를 맛볼 수 있었다. 이 음식의 이름이 ‘피자’로 자리를 잡았지만 발음을 ‘피짜’로 하고, 쓸 때는 ‘핏자’로 하는 이가 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음식의 로마자 표기는 ‘pizza’여서 ‘z’가 두 개이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발음도 ‘피짜’로 들린다. 그러나 서구 외래어 표기에 된소리를 인정하지 않고 겹자음도 인정하지 않으니 ‘피자’로 쓴다. 물론 정통 식당에서 ‘핏자’라고 하는 건 자유다.

그런데 최근의 뉴스를 보면 피자가 ‘핏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규모 군사작전이 임박하면 미국 국방부 인근의 피자 배달이 급증한다고 한다.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피자 주문이 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야근을 하거나 일에 쫓기는 공무원들이 피자로 끼니를 대신하고 있으니 뭔가 긴박한 일이 터질 상황인데 대개는 피를 부르는 전쟁이다. 안타깝다. 맛있는 피자가 ‘핏자’가 돼선 안 된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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