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그림 들고 목포 찾은 서울 화가

남농은 표정 굳은 채 “이게 뭔가”

 

스승 그림 똑같이 그려도 불호령

“시방 뭣하냐, 니 그림 그려야지”

 

누구도 못 보는 지점 슥 짚어줘

체본에 묶어두면 스승 아닌 깡패

전정 박항환 선생께서 내 연구실에 불쑥 들러 들려주신 이야기다. 갓 스무 살 청년 시절 목포 남농(南農) 허건(許楗·1907∼1987) 선생 댁에서 화업(화業)을 익힐 때 일이다. 국전 응모가 있을 무렵이면 가르침을 청하려고 그림을 들고 찾아오는 후학이 많았다. 하루는 스승과 둘이 화실에 앉아 그림 공부를 하는데, 서울서 내려온 40줄의 화가가 먼 길을 찾아왔다.

가져온 그림을 펼치자 화면 가득 청기와 지붕뿐이었다. 손을 대면 까끌까끌한 기와의 거친 질감이 느껴질 만큼 생생했다. 그 대담한 구도와 과감한 붓질을 보자 눈이 번쩍 떠졌다. 와! 서울 화가들은 그림을 저렇게도 그리는구나. 벌어진 입을 못 다문 채 연신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날마다 산에 안개가 걸리고, 골짜기에선 폭포가 떨어지며, 물 위에 물결을 앉히는 그림만 그리고 있던 시골의 서생은 이날 못 보던 딴 세상을 보았다.

그런데 그림을 보던 스승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다소곳이 안절부절못하던 화가가 침을 꼴깍 삼켰다. 한참 만에 나온 스승의 일성은 “이게 뭔가?”였다. 그 말씀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갔다. 저렇게 생생하고 씩씩하게 잘 그렸는데 이게 뭔가라니? 우리 선생님이 도대체 왜 저러시는 거지?

화가가 당황해서 말을 살짝 더듬었다.

“선생님! 이번에 제가 청기와 지붕만 가지고 한번 그려봤습니다.”

스승이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자네가 청기와 지붕 그린 걸 몰라서 그러겠는가. 그런데 저 기와는 지붕을 얹은 지가 며칠밖에 되지 않았네그려. 그리려거든 한 100, 200년 세월이 묵어야 쓰지 않것는가? 잡초도 좀 돋고 이끼도 피고 해야제, 저렇게 막 새로 얹은 기와를 그릴 맛이야 없지 않것는가?”

그 말을 듣는데 아얏 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의아함이 싹 가시고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갔다. 화가가 황급히 펼쳤던 그림을 다시 말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한번은 제자가 그린 산수화를 보시던 스승이 말씀하셨다.

“집은 집터가 있는 벱이여. 아무 데나 막 그리면 안 되지.”

산이 있고 들이 있고 물이 있어도 그 여백 아무 데나 집을 그려서는 안 되고, 꼭 집이 들어앉을 만한 자리를 가려서 집을 그려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집은 집터에 그려라. 이 당연한 한마디를 그날 처음 새겼다. 흰 종이 위에 마음대로 하는 붓질이라도 다 제자리를 잡아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 5년 열심히 스승의 그림을 본떠 그리면 언뜻 분간이 안 갈 만큼 비슷한 모양이 나왔다. 제자가 자꾸 자기 그림 언저리를 배돌며 흉내만 내자, 보다 못한 스승이 한마디를 또 했다.

“너 시방 뭣하냐? 내 그림을 똑같이 그려도 그건 니 그림이 아니고 내 그림이다. 지 그림을 그려야지 왜 내 그림만 그리고 앉았냐? 흉내쟁이 원숭이도 따라쟁이 앵무새도 결국은 가짜다. 못나도 펄펄 살아 있는 네 그림을 그려야지, 암만 말쑥하고 말끔해도 남 흉내는 가짜로 끝난다. 기교가 출중할수록 더 가증스럽게 된다. 따라 하면 망한다. 네 색깔을 입혀야지.”

지나가다 문득 들은 스승의 이런 이야기가 나이 들수록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는 79세 노화백의 이야기에 내 마음이 자꾸 아련해진다. 지나가다 툭 건드리는 이야기 속에 삶의 비의(秘儀)가 숨어 있다. 구도가 어떻고, 채색이 어떻고, 필선이 어떻고만 따지는 세상에서 맥락을 넌지시 짚어주는 이런 한마디가 참 달고 고맙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은 기교가 놀라워서가 아니라 생각지 못한 지점이어서다.

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도 보지 못하는 그런 지점을 스윽 짚어주는 스승이 진짜 스승이다. 기교로는 닿을 수 없고, 재주로는 붙들지 못할 안목은 툭 던지는 한마디에서 광휘를 뿜는다. 수없는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품은 끝에 그 빛을 받고 나서야 후학들은 그다음 단계로 비로소 넘어간다. 여기서부터는 기교를 넘어서는 세계다. 한방에 날로 먹는 공부란 세상에 없다. 스승이 채찍을 내려놓고 돈 갖다 주는 대로 해주면 그는 스승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스승의 체본(體本·본보기로 그려준 그림 또는 글씨) 없이는 그림 한 폭 못 그리고, 글씨 한 점 못 쓴다. 그림을 그려도 글씨가 안 되니 덧손질을 받아야 겨우 그림꼴을 갖춘다. 그렇게 해서 공모전에 입선하고, 초대작가가 되면 뭘 하나? 안목이 없어 낙관 자리에서 망치고 마는 그림이 좀 많은가? 부족하고 질박해서 기교가 모자라도 제정신이 깃들어야 진짜다. 영혼이 빠져나간 기교는 손끝 재주로 분탕 치다 끝난다.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은 수련이 덜 된 증좌다. 이때 빨리하려 들면 더 빨리 망한다. 애초에 아니함만 못하게 된다.

학문을 하든 예술을 하든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한다. 그러자면 바탕 공부가 먼저다. 남 흉내만 내다가는 왜 나만 운이 없나 한탄만 하다 끝난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니 사람만 강퍅해져 못 쓰게 된다. 어디 걸리는 놈 하나 없나 하고 어슬렁거리게 된다. 저한테 나는 화를 남에게 풀게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스승이 있다. 하나는 제자에게 자기 길을 가도록 열어주는 스승이다. 다른 하나는 체본으로 꽁꽁 묶어 자기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스승이다. 후자는 스승이랄 것도 없다. 깡패다. 전시장에 가서 그림 한 폭, 글씨 한 점을 보고 누구에게 배웠는지 금방 알 수 있다면 사제가 모두 가짜다. 우리는 이날 이런 대화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헤어졌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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