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obal Focus
사법불신이 만든 ‘통계의 함정’
엘살바도르, 살인율 99% 감소
멕시코 10년래 최저 집계됐지만
IDB·WB, 미신고 사례 잇단 지적
수사-기소-처벌 연결구조 약해
시민들 여전히 불안한 치안 상태
피해자 보호·신고 간소화 필요
중남미 각국이 군과 경찰을 동원한 조직범죄 단속과 치안 강화 정책을 통해 살인율 등 주요 범죄 지표를 낮추고 있지만, 시민들이 체감하는 치안 불안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범죄 피해의 상당 부분이 신고되지 않으면서 공식 통계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부족이 지속되고 있다며, 범죄 발생 자체보다 범죄자 신고와 수사, 기소, 처벌로 이어지는 형사 사법 시스템의 작동 능력과 이에 대한 시민 신뢰가 치안 안정의 핵심 요소라고 지적한다.
◇범죄 통계는 개선되지만… 범죄 최대 80%는 공식 집계 안 돼= 중남미 여러 국가에서 조직범죄 단속과 치안 강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최근 수년간 살인율을 중심으로 강력범죄 지표가 개선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2023년 발표한 ‘세계 살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 평균 살인율은 2018년 인구 10만 명당 22.1명에서 2022년 19.2명으로 약 13% 감소했다. 2010년대 중반 23명 안팎까지 상승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5년간 완만한 하락세를 이어온 것이다.
국가별로도 살인·범죄율 감소 사례는 이어졌다. 특히 엘살바도르에서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2022년 3월 ‘예외 사태’를 선포하고 갱단 조직원 대규모 체포와 군·경 합동 작전을 시행한 이후 살인율은 급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의 살인율은 2015년 인구 10만 명당 106명에서 2025년 1.3명으로 약 99% 감소했다. 브라질은 2017년 10만 명당 약 31명에서 2025년 16명 수준으로 줄어 약 48% 감소했으며, 멕시코에서는 정부 발표 기준 2025년 살인율이 10만 명당 17.5명으로 2015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통계 수치상 범죄율 하락이 시민들이 체감하는 치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미주개발은행(IDB)이 2024년 발표한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지역의 범죄 비신고 문제’ 보고서에 따르면 중남미 지역 범죄의 약 60∼80%가 신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범죄 피해의 상당 부분이 공식 통계에 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세계은행(WB)도 지난해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지역의 범죄와 폭력’ 보고서에서 “범죄 피해 조사와 공식 범죄 통계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며 “특히 범죄 피해자의 낮은 신고율로 인해 공식 통계가 실제 범죄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남미 국가 전반에서 범죄 통계 개선과 시민 체감 사이의 거리가 커, 살인율 대폭 감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느끼는 범죄 불안은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신고율 낮은 근본 원인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낮은 신뢰=국제기구들은 중남미 국가에서의 낮은 범죄 신고율에 대한 주요 원인으로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지목하고 있다.
IDB는 범죄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주요 이유로 “당국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가장 많이 꼽았다고 밝혔다. 즉 범죄 피해자 상당수가 신고를 해도 수사나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IDB는 또 신고 절차가 복잡하고 처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피해자의 신고를 꺼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짚었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부족은 범죄 대응 전반의 작동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범죄가 신고되지 않으면 경찰 수사가 시작되지 않으며, 이는 기소와 처벌로 이어지는 형사 사법 절차 전반의 작동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 수사 개시율과 기소율, 유죄 판결 비율이 낮게 유지될 경우 사법 기관의 억지력(deterrence)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IDB는 범죄 비신고가 단순히 통계 왜곡에 그치지 않고 사법 시스템 전반의 효과성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엔개발계획(UNDP) 역시 “시민들이 사법 기관이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인식할 경우 범죄 신고 의지가 약화될 수 있다”며 “치안 안정이 단순한 범죄 발생 감소가 아니라 제도에 대한 신뢰와 법 집행의 일관성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신고-수사-기소-처벌 연결 구조 복원이 핵심 과제”= 국제기구들은 중남미 치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범죄 단속 강화뿐 아니라 사법 시스템 전반의 작동 능력과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IDB는 경찰과 검찰, 법원 등 형사 사법 시스템 전반의 대응 능력 강화가 치안 안정의 핵심 요소라고 지적하며 범죄 신고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 온라인 신고 시스템 도입, 신고 절차 간소화, 피해자 보호 강화 등을 제시했다. 신고 과정의 시간·절차 부담을 줄이는 것이 신고율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법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해 범죄 신고가 실제 수사와 처벌로 이어지는 경험이 축적될 경우 시민들의 사법 기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UNDP 역시 치안 안정은 단순히 범죄 발생률 감소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법 시스템 전반의 신뢰와 대응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결국 범죄 신고와 수사, 처벌로 이어지는 사법 절차가 효과적으로 작동해야 범죄 억제 효과도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지연 기자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