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아 정치부 차장
또다시 ‘수금철’이 돌아왔다. 6·3 지방선거 90일 전인 오는 5일부터 후보자와 관련된 출판기념회가 금지되면서 정치권에는 여야 할 것 없이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쏟아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유력 정치인과 지역 인사들을 동원하느냐가 성공의 ‘키’다. 세 과시용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수금 규모’도 결정짓는다. 선거 자금이 절실한 후보자들에게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 규제를 받지 않는 후원금을 한 번에, 크게 ‘땡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한도도 없고 공개할 의무도 없다.
말은 출판기념회지만, 정가에 책을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참석자들은 결혼식서 축의금을 내듯, 보통 2만 원대 책을 가져가면서 봉투에 현금을 넣고 소속, 이름을 적어 모금함에 넣는다. 일부 출판기념회 현장에서는 관계자가 돈봉투에 담긴 현금을 꺼내 세는 풍경까지 벌어진다. 유력 정치인일수록 수금 규모는 커진다. 동료 정치인은 물론 ‘공천 눈치’를 봐야 할 지역 정치인, 각종 정부 기관 관계자, 민간기업까지 잘 보이기 경쟁에 나서기 때문이다. 합법적 ‘갑질’이자 합법적 로비인 것이다.
출판기념회가 ‘검은돈’ 창구가 됐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비록 매번 ‘공(空)약’으로 끝나버렸지만, 특히 선거를 앞두고 양당은 수차례 ‘정치 개혁’ ‘기득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출판기념회 금지를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공수표’마저 보이지 않는다. 제22대 국회에서 한 차례 규제 시도가 있긴 했다. 지난해 6월 김민석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서 김 총리가 2022∼2023년 두 차례 출판기념회로 2억5000만 원가량의 현금 수입을 얻은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당시 김 총리는 “권당 5만 원 정도의 축하금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고, “국민 일반의 눈으로 봐서는 큰돈이지만, 평균으로 봐서는 그다지 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김민석 방지법’이라며 출판물 판매 수입을 정치자금으로 포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법안 등을 발의했지만, 일회성 정쟁용에 그쳤다.
당시 출판기념회 금지법을 발의했던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19일 SNS에 “여야가 손잡고 출판기념회를 없애자”며 “이걸 손 놓고 정치를 바꾸겠다는 것은 허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출판기념회를 “책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보고 오는 것”이라며 “책은 서점에서 사고, 돈봉투를 없애자”고도 했다. 조 의원은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당내에서조차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여야가 손잡고”를 강조한 이유일 터이다.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려 하는 이들이 없다는 개탄이기도 하다.
양당의 정치 개혁 경쟁이 사라진 시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상호 견제는 양측의 힘이 팽팽하게 맞설 때 치열해진다. 하지만 현실에는 독주하는 여당과 지리멸렬한 야당만 있을 뿐이다. 가까운 6·3 지방선거 결과도 전망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했던 2018년 지방선거가 재연될 것이라는 예측 말이다. 어차피 이길 선거, 어차피 질 선거를 앞뒀는데, ‘국민 눈치’를 보며 변화를 외칠 까닭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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