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차 태아를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시킨 뒤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병원장과 집도의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산모 역시 살인의 공범으로 유죄가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는 4일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병원장 윤모 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범죄수익 약 11억5000만 원도 추징했다.
또 수술을 집도한 의사 심모 씨에게는 징역 4년을, 산모 권모 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각각 선고했다. 산모의 경우 살인죄의 공범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아동 관련기관 5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윤 씨에게 환자를 소개하고 알선비를 챙긴 한모 씨 등 브로커 2명은 각각 징역 1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로, 모체에서 갓 태어난 태아에 대한 생명권도 당연히 인정된다”며 “피해자가 태어난 이상 하나의 사람으로 보호받아야 하고 누구에게도 살해할 권한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빛 한번 보지 못하고 숨 한번 쉬지 못한 채 차디찬 냉동고에서 사망했다”며 “살인 범행은 우리 사회의 가장 절대적 가치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 그 결과가 대단히 무겁고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산모 권 씨는 “태아가 살아있는 상태로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병원 대신 미혼모 시설에 갔을 것”이라며 살인 혐의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권 씨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태아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수술할 경우 의료진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사망하게 할 것임을 인식·예견할 수 있는데도 그러한 위험을 용인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죄 적용이 어려운 사정과 관련해선 “태아가 생존 가능한 시점에서 인공 배출돼 ‘살아있는 사람’이 된 이상 낙태죄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살해가 된다”며 “낙태죄 효력 유무와 관계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공백에 따른 혼란 등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관련해 참작할 여지가 있고 임신 종결을 원하는 권 씨의 헌법상 권리를 윤 씨가 조력해온 사정 등은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권 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데 대해선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은 임신·출산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불이익을 겪고 있다”며 권 씨의 상황을 고려해 임신·출산·육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자신과 태아가 불행해질 것이란 생각에 임신 중절을 실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범행 책임을 온전히 이들에게 묻긴 어렵다”며 “임신을 초기에 인지하고 국가가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적극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면 이 사건과 다른 결과가 발생할 수 있었다”고 짚었다.
윤 씨와 심 씨는 2024년 6월 임신 34∼36주 차인 권 씨에 대해 제왕절개 수술을 해 태아를 출산하게 한 뒤, 미리 준비한 사각포로 태아를 덮고 냉동고에 넣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윤 씨는 권 씨의 진료기록부에 ‘출혈 및 복통 있음’이라고 적는 등 사산한 것처럼 허위 내용을 기재하고,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혐의도 있다.
윤 씨는 병원이 경영난을 겪자 임신중절수술로 돈을 벌기 위해 브로커들로부터 알선받아 임신중절 환자들만 입원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러한 방식으로 윤 씨가 2022년 8월부터 2024년 7월까지 2년간 총 527명의 환자를 소개받아 총 수술비 14억6000만 원을 챙겼다고 봤다.
이번 사건은 권 씨가 유튜브에 올린 낙태 경험담 영상을 두고 살인 논란이 불거지자 보건복지부가 2024년 7월 경찰에 진정서를 내면서 수사가 개시됐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윤 씨와 심 씨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고, 권 씨와 브로커들은 불구속기소 했다. 윤 씨와 심 씨는 지난 1월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붙인 석방)으로 풀려났으나 이날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됐다.
권 씨 측은 제왕절개로 인한 분만 당시 태아의 상태에 관해 재판부와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변호인은 선고 뒤 취재진에 “제왕절개 수술과 관련해 태아가 언제 사람이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없는 상황”이라며 “태아가 약물을 통해 이미 사망했다면 자궁 절개는 이미 사산된 태아를 배출하는 절차로 이해할 수 있고, 항소심에 간다면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병철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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