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28일 미국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기 이전 워싱턴DC의 한국 전문가들의 관심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함께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訪中)이었다. 먼 거리 비행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과 지근거리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깜짝 만남 성사 여부가 미중 정상회담이 어떻게 진행될지와 함께 주된 대화거리였다. 물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지만,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 한국 정부는 ‘피스메이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만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입장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내비쳤다.
미국 정부 인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모르겠다’라고 한다. ‘모르겠다’엔 대북 관계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서 상당히 후순위로 밀려 있다는 뜻이 깔려 있다. 아래에서 어떤 보고가 올라가든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정상회담의 기획과 준비 과정을 염두에 두고 판단할 순 없다는 의미도 있다. ‘아직 긍정적인 신호도 없고 구체적 준비도 하고 있지 않지만, 혹시라도 갑자기 지시가 떨어질지 모르니 대비는 하고 있다’ 정도로 읽힌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싱가포르에서 합의문에 서명까지 한 만큼 백악관이 “김정은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는 입장을 낼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까지 터지며 미북 정상 간 만남 성사는 더 어려워졌다. 이란 상황이 트럼프의 방중이 예정된 3월 말까지 정리될지도 불투명하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거의 유일한 ‘동아줄’이었던 김 위원장의 상황도 달라졌다. 우크라이나전쟁을 거들며 러시아와 가까워진 상황에서 트럼프에게 고개 숙이고 만남을 청할 이유도 없다.
미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야 한미동맹에 기초한 대북 공조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미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겠지만, 과연 트럼프의 의중도 그럴까 싶다. 김정은은 지난달 당대회에서 한국과는 대화 여지 자체를 차단하고 미국을 향해서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 만나야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결심하는 순간,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핵을 가진 나라)라고 수차례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비핵화에 대한 엄정한 판단이 남아 있을까. 북한과 대화에 앞서 한미 간의 조율이나 논의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할까. 하다못해 1기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직을 걸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위험하고 되돌릴 수 없는 조건으로 합의하는 것을 막으려는 참모들이 있을까. 모두 부정적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국제사회 질서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야흐로 각자도생의 시대다. 미국은 이미 새로운 힘의 질서를 추구하겠다고 나섰다. 북핵을 다루는 국제사회의 틀, 한국 정부의 입장도 계속 변화해 왔듯, 지금은 트럼프 등장 후 달라진 국제질서에 맞게 북한과 북핵에 대한 접근도 달라야 할 때다. 페이스메이커로 그저 트럼프 대통령의 달리는 방향과 속도에 맞추기엔 너무 위험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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