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이데올로기

황병주 지음 | 돌베개

“어쩌면 한국사회는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방과 전쟁을 거쳐 자본주의적 산업화로 이어지기까지, 20세기 중반 이후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원형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였다. 선진국 도약을 향한 열망 속에서 국가 통치체계와 경제질서가 구축됐는데, 그 가운데 선 인물이 바로 1963∼1979년 대통령으로서 국가권력의 정점에 있던 박정희다. 그렇지만 역사학자인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박정희라기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박정희’다. 박정희를 위시한 당대 지식과 권력 엘리트들이 형성한 국가 이데올로기와 그 통치성이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 저자는 주목한다.

저자는 박정희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군사적 자유주의(miliberalism)’에 있다고 본다. 미국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근대화론과 개발담론이 부상하던 시기, 박정희 체제는 이러한 통치 이데올로기를 활용해 경제개발을 압축적으로 진행했다. 규율과 통제, 명령과 복종을 특징으로 하는 군사주의는 국민을 경제개발과 근대화에 동원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꽃피우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권위주의 정치 체제가 시장경제와 조응하는 이 독특한 조합 속에서, 시장에 전쟁 문법이 스며들어 ‘전투적이고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어쩌면 시장의 군사적 자유주의야말로 한국 자본주의의 놀라운 성공의 기원일지도 모른다. 전쟁 같은 노동을 견뎌내고 사는 게 전쟁인 삶을 감내했던 이들이 만들어낸 경쟁력이야말로 거의 무일푼에 가까웠던 한국 자본주의의 유일한 무기였다”고도 적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유주의는 이후 신자유주의로 모습을 바꿔 21세기에도 사회 전방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더욱 가혹하고 치열해진 경쟁의 무대 속에서 저자는 또 다른 엘리트 지배계층인 ‘포스트 박정희’들을 본다. 20세기 박정희 이데올로기가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면, 21세기 이들이 만들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저자는 묻는다. 624쪽, 3만 원.

인지현 기자
인지현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