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기 출범식 날 플로리다주와 멕시코 사이의 멕시코만(灣)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알래스카주의 북미대륙 최고봉인 데날리산을 매킨리산으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산 명칭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지만, 굳이 따지면 미국 내부적 논란거리다. 그런데 멕시코만을 하루아침에 아메리카만으로 바꾸는 것은 외교적 분란 소지가 크다. 이웃국인 멕시코의 반발이 뻔한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AP통신이 멕시코만 표기를 고수하자 취재 제한 조치를 내려 수정헌법 제1조 위반 판결까지 받은 바 있다.
더 나아가, 지난해 5월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때 트럼프 대통령은 페르시아만을 아라비아만으로 바꿀 계획을 공개해 논란이 일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한 만의 명칭은 16세기부터 페르시아만(Persian Gulf)으로 불렸다. 그러나 아랍국들이 이란의 옛 이름 대신 아라비아만이란 명칭을 써야 한다고 주장해 갈등이 지속됐다. 지난해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계획을 강행하지 않았지만, 이란 수뇌부 참수작전을 결행한 만큼 공격 종료 선언 때 아라비아만으로 개칭할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도 동해-일본해 표기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은 일본해를 공식 명칭으로 쓰고, 국무부나 국방부도 이 기준에 따른다. 심지어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기습 폭격으로 2000명 이상의 군인 및 선원이 사망하고, 전함 8척을 포함한 20척의 함선과 300대의 항공기를 잃었음에도 하와이 호놀룰루 진주만 국립기념관은 일본해 표기 상황지도를 쓴다. 진주만은 1776년 독립 이후 미국이 처음으로 공격을 당한 현장이다. 미국의 위대함을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치욕의 역사를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85주년이 되는 오는 12월 일본해 표기 교체 선언을 하면 어떨까? 이미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은 서해, 러시아는 동해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다”고 증언해왔다. 서해·동해를 언급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존중을 표한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브런슨 사령관의 표현을 인용하는 형식으로라도 입장 변화를 밝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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