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상 환경은 유례없는 격변기를 맞고 있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미국 행정부의 관세 압박은 우리 수출 기업들에 적지 않은 도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우리 정부와 기업은 합심해서 미 행정부와 치열하게 협상한 끝에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를 도출할 수 있었고, 그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로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이 발의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법안은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미투자특별법은 지난해 한미 정상 간 합의된 ‘전략적 투자 협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근거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미국 측 요구 사항은 명확했다. 한국산 주요 제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해주는 대신, 한국 기업들이 향후 반도체·전기차·조선 등 전략 산업 분야에서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이행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미 투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발의된 대미투자특별법은 투자 전반을 관리할 ‘한미전략투자공사’ 설립과 이를 뒷받침할 기금 조성의 법적 토대를 담고 있다. 즉, 이 법안은 단순히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법안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받아낸 ‘관세 인하’라는 실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약속한 ‘투자 이행’을 제도적으로 보증하는 국가적 약속의 증명서인 셈이다.
대미투자특별법 통과가 지연된 배경에는 여야의 정치적 해석 차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해당 합의가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사안인 만큼, 단순한 법안 처리에 앞서 국회의 공식적인 비준 동의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이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낮은 양해각서 성격이기에 신속한 입법을 통해 실행력을 확보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공방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내부의 논쟁이 길어지는 사이 미국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미국 측 고위 관계자들은 사회관계망(SNS) 등을 통해 우리 측 이행 법안의 통과가 지연되는 데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의 처리가 무산되거나 더 지연될 경우, 우리 경제가 입을 타격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첫째, 주요 수출 품목의 수출 경쟁력 붕괴가 염려된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와 관련 부품 산업은 우리 수출의 핵심축이다. 그에 대한 관세가 다시 10% 더 인상될 경우 가격 경쟁력은 순식간에 상실되며, 이는 수십만 명의 고용이 걸린 국내 자동차 생태계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둘째, 통상 협상과 관련된 대외 신인도 추락도 염려된다. 한미 정상이 합의하고 실무 조율까지 마친 사안이 입법부의 정쟁으로 무산된다면, 앞으로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과 통상 협상을 신뢰하고 진행하겠는가. 셋째, 기업의 불확실성 증대도 염려된다. 이미 미국 현지 투자를 결정하고 실행 중인 우리 기업들은 법적 근거 미비로 인해 현지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를 받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처럼 대미투자특별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는 국가경제의 안정, 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 대외 신뢰도 유지라는 복합적 이익을 담보한다. 선거 등 정치적 쟁점 법안과 별개로 여야가 국익 우선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해 이 법안을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