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고운 봄비가 내렸습니다/ 산은 깊고 주위는 고요하여 긴긴날 그냥 보내기 어려워 대나무를 마주하며 번뇌로 가득한 마음을 한 번 씻어보려고 합니다/ 부디 새로 돋아난 대나무 두 분(盆)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뜨락은 아직 일구지 않아 식물을 심을 만한 땅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화분을 얻어 옮겨 심어서 책상 머리맡에 두려고 합니다/ 파초 한 그루도 캐어서 보내주시겠습니까?/ 매화는 덩치가 커서 짊어지고 오기 어렵다고 하니, 나중에 큰 소 한 마리 빌려 보내려고 합니다/ 번흠(煩欠) 올림’(一犁佳雨/ 山深境寂 長日難消 欲對此君 一滌煩襟/ 幸以双盆嫩葉 惠貺如何如何/ 三徑未拓 苦無地種/ 更要得移盆 置諸案頭爾/ 芭蕉一種 亦令採送耶/梅兄體大難容擔負云 從當借送一巨牛計爾 / 煩欠 頓首)

유명현(柳命賢·1643∼1703)이 쓴 편지다. 그는 1673년 정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며 화려하게 관계에 등장했다. 전라도관찰사로 재임하던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실각할 때 정계를 떠났다가 1689년 기사환국으로 복관돼 형조판서와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이 편지를 쓴 해는 알 수 없지만, ‘논밭 갈기에 알맞을 만큼 내린 단비’를 의미하는 ‘일리가우(一犁佳雨)’를 편지의 서두로 삼은 데서 봄비가 대지를 적시던 어느 이른 봄날에 쓴 것은 분명하다.

그는 발신인 란에 ‘번흠(煩欠)’이라고 적었다. 이름 몇 자 쓰면 될 것을 ‘번거롭게 이름을 쓰지 않아도’ 잘 아는, 친한 사이임을 나타내기 위해 굳이 이렇게 썼다.

봄비가 내리자 유명현은 정원을 꾸미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땅에 초목을 심을 형편이 안 되는 까닭에 대나무와 매화, 그리고 파초 화분을 얻어 가까이 두고 싶었다.

‘차군(此君)’은 대나무의 다른 이름이다. 왕휘지(王徽之)가 ‘하루라도 이 사람 없이 살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라고 하며 대나무를 ‘차군’이라고 한 데서 유래됐다. 혹한을 견디고 깊은 향기를 발하는 매화는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퇴계 이황이 “매화 화분에 물을 주거라”라는 말을 남기고 평온하게 앉아 숨을 거뒀다는 얘기는 잘 알려진 일이다.

이 편지에는 아열대식물인 파초도 등장한다. ‘파초(芭蕉)’는 16세기 문인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시에 ‘좁쌀 한 말을 치르고서야 겨우 종근을 구했다’고 할 만큼 고가였다. 그럼에도 사대부들의 파초 사랑은 대단했다. 겨울에도엔 잎이 지지만 뿌리는 죽지 않고 이듬해 다시 큰 잎을 틔우는 모습이 선비의 절개와 닮았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넓은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감상하며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유명현은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실각할 때 흑산도에 유배됐다가, 5년 후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701년 인현왕후를 해치려 하였다는 죄로 탄핵받아 다시 남해도에 안치됐고 그곳에서 죽었다.

고문헌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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