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논설위원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쿠르드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상군 투입을 주저하는 미국이 쿠르드족을 내세워 이란을 겨냥한 대리전에 나서면서다. 쿠르드족은 인구 3000만∼4000만 명 규모인 이란계 산악 민족이다. 수백 년간 독립 국가를 세우지 못한 채 이란·이라크·튀르키예·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강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중동 분쟁에서 서방의 파트너 역할을 했지만, 이용 가치가 다하면 번번이 버려지는 비운의 역사를 겪어 왔다. 쿠르드 속담에 ‘산 외에는 친구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을 도와 오스만튀르크에 대항해 싸웠지만, 쿠르드 국가 건설 약속은 독립한 튀르키예의 반대로 파기됐다. 이란은 1980년대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지원했지만, 전쟁 뒤 외면했다. 당시 이라크 정부군의 화학가스 공격으로 18만 명이 학살당했다. 2010년대 시리아 내 쿠르드족은 미국과 손잡고 이슬람국가(IS) 격퇴에 앞장섰으나,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미군이 시리아 북부에서 돌연 철수하면서 튀르키예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이 친미 성향 쿠르드족을 동원한 것은 이란의 체제 전복(regime change)이나 미국에 우호적인 지도부 교체를 노리기 때문이다. 쿠르드족 전투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는 뜻의 쿠르드어 ‘페슈메르가’로 불린다. 전투 경험도 풍부하다. 2022년 이란 내 ‘히잡’ 반정부 시위 때도 핵심이었다. 무장 쿠르드족을 이용해 이란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올 초 강한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던 이란 시민들의 재봉기를 유도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을 완성해 중동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아브라함 협정은 2020년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4개 아랍국(UAE·바레인·수단·모로코)이 맺은 협정이다. 이 협정에 이슬람 수니파 지도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친미화된 시아파 주도국 이란을 참여시키겠다는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전 중동 친미 네트워크를 복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쿠르드족이 이번엔 버림받지 않고 트럼프 구상 실현에 기여할 수 있을까.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