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

매년 3월 초,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는 세계 100여 개국의 통계기관장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맘때 열리는 ‘유엔통계위원회’는 단순히 숫자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다. 경제, 사회, 환경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30여 개의 방대한 안건을 치열하게 다루며 세계 통계 데이터의 표준과 다가올 인류의 미래를 논의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협력의 장’이다.

특히 올해 열린 유엔통계위는 이전 회의와 사뭇 다른 기류 속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과거 경제, 사회, 환경 등 전통적 분야의 뚜렷했던 구분이 점차 흐려지고 통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통계의 역할 역시 과거를 기록하는 영역을 넘어 미래 사회를 이끄는 핵심 원동력인 ‘데이터’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복잡한 현대 사회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조사 방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공공 및 민간 데이터의 폭넓은 연계 활용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아울러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할 ‘데이터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회의 내내 강조됐다.

이러한 글로벌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 속에서 각국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집중됐다. 한국이 기존의 ‘통계청’을 ‘국가데이터처’로 격상한 조직 개편은 국제사회에서 매우 선제적이고 혁신적인 조치로 평가받았다. 부처 명칭에 ‘데이터’를 명시해 국가 통계기관이 범정부 데이터를 총괄하는 기구인 ‘국가 최고데이터책임자(CDO)’로서의 정체성을 확장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한국의 선구적인 조직 개편에 깊은 공감과 관심을 표명했으며, 더 나아가 한국의 모델이 각국 통계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돼 주기를 희망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기준을 따르는 수준을 넘어 도래한 데이터 시대를 최전선에서 선도하는 위치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유엔통계위를 달군 또 하나의 뜨거운 의제는 단연 ‘인공지능(AI)’이었다. 전 세계 통계 데이터 분야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는 AI 기술을 접목해 데이터 생산 과정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맞춰졌다. 특히 AI가 공식 통계자료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생성하는 환각 현상을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AI 친화적 메타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은 각국이 직면한 시급한 과제였다. 한국은 이미 AI가 통계를 쉽게 읽고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통계 메타데이터 구축 및 서비스 로드맵을 추진하고 있어 이번 회의에서 다시 한번 큰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국가데이터처’라는 새로운 이름을 걸고 참석한 첫 유엔통계위에서 데이터를 전면에 배치하고 AI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국가적 의지를 세계 무대에 천명했다. 이제는 한국형 데이터 거버넌스 모델이 완벽한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적 내실을 더욱 단단히 다져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국가 경쟁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의 벽을 허무는 데이터 생태계 조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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