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봉 전 육군참모차장, 동국대 특임교수
미국과 이스라엘의 2·28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 전쟁으로 주한미군 전력 차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특히, 최근 미군 전략수송기 C-5 갤럭시와 C-17 글로브마스터가 여러 차례 오산기지에 이·착륙하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주한미군 차출이 이미 시작됐다는 보도까지 내놓고 있지만, 국방부 대변인은 “주한미군 전력 운용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만 되풀이한다.
국방부 대변인의 이런 태도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한국 방위는 한국이 주책임을 담당하고, 주한미군은 역내 전략군 역할을 맡는 ‘동맹 현대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일상적인 동맹 운용 방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에도 지금 같은 수동적인 태도가 바람직한지 의문이 든다.
현재 중동 차출이 거론되는 주한미군 전력은 한반도 방위에 꼭 필요한 핵심 전력이다. 패트리엇과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를 위한 핵심 전력이고, M270 다연장로켓시스템(MLRS)은 한반도에 배치된 지상군의 유일한 장거리 타격 자산으로 상징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우리는 한반도 방위의 주체로서 방위력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주한미군 전력 운용에 대해 의견을 적극 제시하고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개전 초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 목표 달성에 4∼5주를 예상했었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지상군 투입과 장기화 가능성을 열어놨다. 아울러, 많은 전문가는 이란이 미·이스라엘의 전력을 소진하고 반전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미사일과 드론을 소규모 게릴라식으로 운용하는 ‘가랑비’ 전술을 구사하며 장기전을 펼 것으로 본다. 만약 이란의 전략이 성공하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더 확대될 것이고, 그만큼 대한민국 안보는 취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당사국으로서 주한미군의 전력 운용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
지난 2월 18∼19일 주한미군 F-16과 중국 전투기 간 서해 상공 대치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 있다. 서해 공중 훈련은 주한미군의 역할이 한반도 방위에 머물지 않고, 중국 견제로 확대되면서 실제 훈련으로 나타난 케이스다. 훈련이 미중 군사적 경쟁 공간에서 한국과 긴밀한 조율 없이 이뤄짐에 따라 2006년 한미가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 정신을 훼손하고, 한국의 기지와 공역이 미중 대결의 최전선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반복되면 한국은 의도와 상관없이 ‘연루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과 협의를 전제로 한다는 원칙 재확립이 중요하다.
이번에 주한미군의 중동 차출이 이뤄지면 이는 ‘동맹 현대화’ 이후 첫 번째 사례로, 향후 주한미군 전력 운용의 선례가 될 수 있다. 정부는 문제를 회피하기보다 이번 기회에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구체화하는 ‘사전 협의 메커니즘’을 제도화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유형별 기준을 정립하며, 협의 절차를 제도화해 어떤 경우에도 군사대비태세가 흔들림이 없이 유지되는 가운데 전략적 유연성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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