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윤석 정치부 차장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6·3 대선 이후 한동안 사석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얘기만 나오면 분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고 한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대법원이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은 정치생명을 끊기 위한 정치 개입이라고 의심했을 터다. 이 판결 이후 조 대법원장은 여권의 ‘눈엣가시’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공포된 ‘사법개편 3법’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조 대법원장을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다. 강경파를 중심으로 사퇴 압박과 탄핵 으름장이 난무하고 있다. 근원에는 파기환송 판결이 있지만, 공세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내란 우두머리 사건에 대한 지귀연 재판부의 1심 선고다. 민주당은 ‘지귀연의 판결’에서 ‘조희대의 그림자’를 찾기 위해 상상과 추론에 기반한 음모론을 꺼냈다. 명확한 근거 없이 1심 판결에 드러난 무수한 사실 오인은 “그대로 조희대식 사고방식”(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라고 주장하거나, “전두환보다 위험한 ‘윤석열 친위 쿠데타’에 법정 최저형을 선고한 조희대 법원 카르텔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이성윤 최고위원)고 압박하는 식이다.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음모론은 지난해 5월 파기환송 판결 직후에도 나왔다. 당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윤 전 대통령 탄핵 결정 후 조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비밀리에 만나 공직선거법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했다고 주장했으나 ‘유튜브발(發) 가짜뉴스’로 판명 나 망신만 자초했다. 이재명 정부가 임명한 ‘내란특검’은 조 대법원장의 비상계엄 관여 여부와 공직선거법 사건의 ‘졸속 처리’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정황을 찾지 못해 불기소 처분하기도 했다. 사회학자 전상진이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간파했듯, 음모론은 이제 ‘약자의 무기’를 넘어 기득권이 반대 세력을 찍어내는 ‘지배의 망치’가 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바뀌는 국회 의석은 고정불변이 아니지만, 헌법이 명시한 삼권분립은 시대를 초월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의심과 분노, 음모만으로 대법원장을 위협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공세는 국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 이 대통령은 외교 성과와 확고한 국정 장악력으로 6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중도·보수층을 포섭해 ‘뉴 이재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삼권분립을 흔드는 음모론이 확장된 지지 기반을 도리어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원조 친명’인 김영진 의원조차 “진퇴의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며 “헌법·법률을 위반한 것이 있을 때 탄핵을 진행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펴고 있지 않은가.
여당 지도부는 조만간 의원총회를 열어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 추진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중이 어떠한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 대통령이 사흘 전 SNS에 남긴 글은 여권과 사법부의 충돌 국면에도 적용돼야 할 경고다. ‘나의 의견만이 진리이자 정의이고, 너의 의견은 불의이고 거짓이라는 태도는 극한적 대립과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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