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
호르무즈의 포성엔 여러 의미
美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 입증
국제기구와 규범 역할도 실종
이란 핵무장 저지 外 다른 의도
中 주도의 국제 협력 틀 허물기
韓도 낡은 미·중 균형론 버려야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11일째 벌어지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은 오늘날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팍스 아메리카나’와 세계화의 황금기가 저물고 있다는 말이다. 패권의 절정은 지났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은 국제정치에서 힘의 논리가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를 다시 확인시킨다.
미국의 선제적 군사행동은 여러 측면에서 당혹스럽다. 무엇보다 미국은 오랫동안 전 지구적 안보 질서의 설계자이자 수호자를 자처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유엔과 여러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국제질서를 구축했고, 스스로를 그 질서를 관리하는 주체로 규정해 왔다. 그러나 이번 군사행동에서 드러난 것은, 집단안보에 대한 신뢰라기보다 안보 위협 제거를 앞세운 일방적 군사력의 사용이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서방 세계가 오랫동안 강조해 온 국제 규범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체결된 이란 핵합의(JCPOA)는 이미 파기됐고, 동맹국들의 우려 역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미국 의회의 명확한 승인 절차 없이 군사행동이 이뤄졌다는 점 역시 논란을 낳는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이나 최근 국제정치에서 나타난 여러 사건처럼, 오랫동안 축적된 규범과 가치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국과 함께 질서를 유지해 온 동맹국들조차 대체로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와 공존을 약속했던 국제질서의 기반이 균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핵협상 결렬과 이란의 잠재적 핵무장이다.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해 중동의 안보 균형을 흔드는 상황은 미국과 이스라엘뿐 아니라 많은 국가가 우려하는 문제다. 더구나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시아파 축’을 형성해 왔다. 이 네트워크는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에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핵무장 저지라는 명분만으로 현재의 사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보다 거시적인 흐름에서 보면, 이번 충돌은 강대국 정치와 다극 체제 정치가 충돌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나타난 사건이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이라는 더 큰 틀에서 보면 이란 문제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이란은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참여하며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해 왔고, 중국의 에너지 안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만약 이란이 약해지거나 친미적 정권이 등장한다면 중국이 확보해 온 에너지 네트워크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과거 소련이나 일본과는 차원이 다른 중국의 부상을 고려할 때, 중국의 전략적 공간을 제약하는 것은 미국이 구상하는 신질서의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미국의 외교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이 과거에는 다자주의와 국제제도를 통해 질서를 관리하려 했다면, 최근에는 선택적 동맹과 군사적 우위 및 자국 이익을 앞세운 더 노골적인 현실주의로 이동하고 있다. 국제기구의 역할은 제한되고 힘의 정치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구상이 쉽게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힘의 사용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전 세계 원유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불안정해질 경우 국제 유가와 세계 경제는 크게 흔들린다. 이는 미국 국내 정치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지상군 투입 없이 이란의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도 쉽지 않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과 러시아가 더욱 긴밀하게 협력할 가능성도 있다. 딜레마다.
국제질서의 균열이 점점 선명해지는 지금, 한국 역시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과 마주한 대한민국은 그러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가. 다자적 국제질서의 회복이 요원한 세계에서 국가의 생존을 지키는 것은 결국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전략적 선택일 것이다. 강대국의 전략이 충돌하는 세계에서 과거와 같은 불행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면 낡은 미중 균형론이나 이념 논쟁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냉혹한 논리로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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