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리뷰 - 극장의 시간들

 

씨네큐브 개관 25주년 기념

이종필·윤가은·장건재 작품

단편소설처럼 엮은 ‘앤솔러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영화의 시간’(사진 위부터), ‘자연스럽게’, ‘침팬지’ 등 세 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티캐스트 제공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 기념으로 제작한 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영화의 시간’(사진 위부터), ‘자연스럽게’, ‘침팬지’ 등 세 개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티캐스트 제공

프로 영화감독들의 ‘조별과제’란 이런 것일까. 조별과제를 내준 곳은 광화문 ‘망치 동상’으로 유명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 씨네큐브다. 2000년 겨울 개관한 씨네큐브가 25주년 기념으로 이종필·윤가은·장건재 감독에게 극장(씨네큐브)을 소재로 한 단편영화를 각각 제안했다. 한국 영화계의 차세대 주역인 세 감독은 이 기회를 빌려 언젠가 풀어놓고 싶었던 소소하지만 진실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겼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앤솔러지 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단편소설집처럼 하나의 띠로 묶였다.

◇이종필 감독 ‘침팬지’= 2000년, 씨네큐브 극장의 좌석이 비닐 포장을 벗겨내고 관객 맞이를 위한 막바지 단장 중이다. 인근 비디오방을 홍보하는 피켓 아르바이트 중인 어린 고도(원슈타인)는 개관 후 이곳에서 또 다른 시네필 모모(이수경), 제제(홍사빈)를 만나 예술 영화의 매력에 완전히 스며든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씨네큐브. 어른 고도(김대명)는 감독이 되었고, 침팬지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어 개봉했다. 개봉 다음 날 두근대는 마음으로 포털사이트 영화 평점을 연다. 인공지능(AI) 클로버의 목소리로 읽어주는 관람평은 신랄하고 매서우며 핍진성이 가득하다. 영화감독들이 얼마나 피를 말리며 개봉 직후의 시간을 보내는지를 배우 김대명이 친구 이 감독에게 빙의해 현실감 있게 연기한다.

◇윤가은 감독 ‘자연스럽게’= 윤 감독은 지난해 ‘세계의 주인’, 그리고 2016년 장편 데뷔작 ‘우리들’과 2019년 ‘우리집’까지 어린이·청소년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기용해 영화를 찍는, 주목받는 독특한 연출가다. 윤 감독의 연출 방식과 현장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에 대한 질문에 답이 될 만한 단편영화가 바로 ‘자연스럽게’다.

일곱 명의 여자 어린이가 마을 뒷산에서 자기들만의 탐험을 하며 즐거운 방과 후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꺾어지는 코너를 돌아 등장하는 찰나, 쿨토시와 등산모자로 중무장한 여성 감독(고아성)이 어린이 배우들에게 “좀 더 자연스럽게 걸어와야지”라는 디렉팅을 준다. 아이들은 특유의 솔직함으로 “뭐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거야?” 조잘거리며 새 테이크를 준비한다. 영화였다가, 현실이었다가. 영화 안에서 영화를 찍는 ‘메타 영화’. 심지어 영화의 말미엔 고아성 배우에게 디렉팅을 하는 실제 윤 감독이 잠시 등장한다. 윤 감독은 “메타의 메타가 되는 순간이 또 흥미로울 것 같아서, 촬영 도중에 새롭게 만든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장건재 감독 ‘영화의 시간’= 세 작품 중 ‘극장의 시간’이라는 주제에 가장 충실하다. 씨네큐브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청소미화원 우연(장혜진), 영사기사(권해효), 매표소 직원(김연교), 그리고 오랜만에 정동 나들이에 나선 중년 여성 영화(양말복)가 등장한다. 7월의 무더운 하루, 씨네큐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개점 준비를 한다. 그사이 영화는 정동길 한 바퀴 돌아보고, 모교에도 한번 들어갔다가 더위를 피해 씨네큐브로 향한다. 그리고 고교 동창이던 우연이 영화를 알아보고, 그녀에게 영화 티켓을 선물한다.

어둡고 안락한 극장에 들어간 영화는 그러나, 깊은 단잠에 빠지고 만다. 꿈속에서 그녀는 고교생으로 돌아가 여름날 비를 피해 씨네큐브 건물 처마 밑에 숨어든다. 어쩌면 가장 달콤하고 환상적인 순간일 것이다. 장 감독은 “잠들게 만드는 영화는 나쁜 영화인가, 아니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세 감독의 단편을 엮은 책의 앞뒤 표지처럼 실제 25년간 근속 중인 홍성희 씨네큐브 영사실장의 하루가 담겼다. 이 감독은 “홍 실장님이 영사기사를 꿈꾸는 젊은 친구(가상 인물)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찍어서 수미상관 구조로 프로젝트를 완결지어 보았다”고 설명했다.

이민경 기자
이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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