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미 문화부 차장
‘4050 책의 해’라는 게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40·50대의 독서를 위해,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한 독서 캠페인이다. 그런가 하면, 2022년은 ‘청년 책의 해’였다. MZ세대 등 청년층에 친화적인 독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 밖에, 고령층의 독서 생활을 장려하는 ‘60+ 책의 해’(2021), 10대들의 독서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의 ‘청소년 책의 해’(2020)도 있었다.
출판·서점 관계자가 아니라면 큰 관심도,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는 ‘책의 해’가 떠오른 건, 최근 발표된 2025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때문이다. 지난해 한 권 이상 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은 38.5%로 역대 최저치다. 성인 독서율은 2013년(71%)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는데, 40% 아래로 떨어진 건, 이 조사가 시작된 1994년 이후 처음이다. 애초 책을 안 읽으니 ‘책의 해’가 생겨났겠으나, 각고의 노력에도 결과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둘러보면 당연하다. 도파민은 쇼트폼을 능가할 수 없고, 효율은 인공지능(AI)을 따라갈 수 없다. 오락으로도, 정보로도 책은, 책 아닌 것들에 필패하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의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절망적이다. 가장 큰 감소 폭을 보인 중년층의 독서율은 40대가 41.0%, 50대가 26.9%였다. 정리하면, 4050의 70%가 1년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2030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텍스트힙’도 실제론 큰 힘을 쓰지 못했다. ‘독서는 멋진 것’이라더니, 20대의 독서율은 겨우 0.8%P 올랐고, 30대는 0.1%P 하락했다.
‘책의 해’로도, ‘텍스트힙’으로도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독서를 이제 포기해야 할까. 책을 통한 사고의 훈련, 감수성의 단련, 내적 성장의 체험 같은 것 말이다. 요즘은 AI로 공부하고, 심리적 위안도 얻고, 진로와 미래까지 묻지 않나. 책이 가장 잘하고, 책만이 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들을 내려놔야 할까. 천천히 읽고 생각할 때 찾아오는 깨달음, 정신의 고양, 그리고 세계의 확장…. 오직 인간이기에 가능했던 그 경험이, 머지않아 ‘레트로(복고 현상)’ 아니, ‘뉴트로(뉴+레트로)’로 남게 될까 두렵다. 뉴트로는 겪지 않은 과거를 그리워하여 이를 체험하는 문화 형태다. 누군가는 그렇게라도 읽기가 살아남는다면 다행이라고 자조할 수도 있겠다.
긍정적인 대목이 없는 건 아니다. 인간의 고유한 행위인 독서를 ‘유물화’하지 않겠다는, 크고 작은 의지의 발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서다. 우선, 밖으로는 영국 정부가 선포한 ‘2026 국가 독서의 해’가 주목된다. 학교는 물론, 출판사와 유관 기관, 미디어, 프리미어리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협력을 통해 국민의 독서 참여를 촉진하는 대대적인 캠페인이다. 영국 정부가 독서를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 과제로 규정한 점이 핵심인데, 종이책뿐 아니라 전자책, 오디오북, 만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읽기를 포용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안으로는, 속수무책과 필패에도 굴하지 않고 ‘책의 해’가 계속된다. 특별히 올해는 ‘문학책의 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후 문학 시장에 불고 있는 훈풍에 기대를 걸어 본다. 그 바람이 잠들어 있던 ‘읽는 인간’을 깨워낼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그들의 소멸 속도는 조금 늦출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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