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 구독 사회

정재훈 지음│에피케

 

치료 아닌 예방이 목적인 영양제

검증 부실하고 부작용 명시 안돼

‘천연·오가닉’단어로 포장되기도

 

영양결핍 거의 없는 현대사회서

과잉투약 넘어서 신체튜닝 세태

약사인 저자가 날카롭게 꼬집어

비타민부터 마그네슘까지 수많은 영양제를 마치 ‘구독’하듯 먹는 시대다. ‘건강 구독 사회’를 통해 정재훈 약사는 지금의 과잉 영양 시대에서 희미해진 ‘건강’의 의미를 짚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비타민부터 마그네슘까지 수많은 영양제를 마치 ‘구독’하듯 먹는 시대다. ‘건강 구독 사회’를 통해 정재훈 약사는 지금의 과잉 영양 시대에서 희미해진 ‘건강’의 의미를 짚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아침마다 삼켜야 하는 영양제가 한 움큼이다. 비타민C와 D, 오메가3, 유산균, 마그네슘에 최근엔 눈이 침침한 것 같아 루테인까지 추가했다. 딱히 아픈 곳도 없지만 피로에 좋다, 수면에 좋다, 면역력에 좋다는 말을 듣고 하나둘 챙기다 보니 이제는 무엇이 무슨 효과를 내는지조차 헷갈린다. 마치 결제하곤 방치해둔 넷플릭스 계정처럼, 목적 없이 건강을 ‘구독’하고만 있다. 정재훈 약사는 신간 ‘건강 구독 사회’를 통해 불안이 예방을 부르고, 결국엔 구매로 이끄는 이 같은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당신이 아프지 않은 건 알아요. 하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하루 한 알이면 숨어 있는 결핍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1940년대 ‘멀티비타민’(종합비타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미국 제약사는 이 문구로 ‘과잉영양’ 시대의 문을 열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가 아닌 ‘예방’하기 위해 돈을 쓰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과거에 비타민은 구루병이나 괴혈병을 예방하는 기적의 물질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이미 2~3세기 전 이야기. 풍부한 식재료와 고도화된 조리기술이 주어진 현대 사회에선 가공식품만으로도 이미 비타민은 충분히 보충되며 교과서적인 영양 결핍을 겪을 일은 거의 없다.

물론 비타민C를 꾸준히 복용할 때 감기 기간이나 증상이 조금 줄었다는 연구가 있다. 소화력이 떨어져 음식을 통한 영양 흡수가 어려워지는 노년기에 영양제가 인지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흥미로운 분석도 나온다. 다만, 비타민의 효능에 대한 분분한 논쟁 속에, 우리는 그저 결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영양제를 털어 넣는 것이 현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들이 효과가 뚜렷한 ‘약’보다도 ‘영양제’를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약과 식품의 경계는 사실 모호하다. 법과 제도로 구분해두었지만 ‘약처럼 강하게 작용하는 물질’과 ‘거의 영향이 없는 물질’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 그사이에 놓인 건강기능식품(영양제)은 일종의 회색지대다. 그 덕에 건강기능식품은 검증의 문턱이 낮다. 의약품은 시장 출시 전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치고 “심근경색, 심장정지, 급사 위험”처럼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적시해야 한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은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처럼 모호하게 포장되며, 부작용 경고 역시 “특이 체질의 경우 과민반응 주의” 정도로 뭉뚱그려진다. 이 또한 제품 출시 후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수집되는 데이터만으로 한정된다. 소비자는 이 얕은 검증 문턱과 느슨한 경고문 덕분에 영양제가 더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여기에 ‘천연’ ‘오가닉’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 합성 화학물질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본능인 ‘케모포비아’가 자극되며 지갑이 열린다. 치명적인 독성 물질인 비소와 수은도 100% 자연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인플루언서와 소셜미디어가 부추기는 촘촘한 ‘영양제 루틴’은 우리를 더 큰 혼란에 빠뜨린다. 아침 공복엔 유산균, 식후엔 비타민, 취침 전엔 마그네슘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 정작 몸이 좋아져도, 속이 더부룩해져도 무엇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여러 영양제를 과잉 복용하면 이를 처리해야 하는 간에 대사병목현상이 일어나거나 성분끼리 혈액 속에서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된다.

이제 영양제 과잉을 넘어 약을 영양제처럼 소비하는 ‘신체튜닝’의 시대까지 도래했다.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제는 ‘하이엔드 다이어트 영양제’처럼 소비되고, 당뇨병 약은 ‘노화 방지제’로, ADHD 치료제는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한다. 성장호르몬 주사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특발성 저신장(ISS) 환자를 위한 치료제지만, 이제는 자녀의 고속 성장제가 돼 시장규모가 4445억 원에 이르렀다. 시장이 5년 새 3배 가까이 커진 가운데 뇌압 상승이나 척추측만증과 같은 부작용의 위험은 기꺼이 감수하는 형국이다.

최근에는 연속혈당측정기(CGM)와 유전자검사까지 동원해 개인의 영양 반응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혈당이 치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카페인을 섭취하면 잠 들기 힘든 유전자,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는 유전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유전자까지 분석하며 더 면밀하게 영양을 챙겨야 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 ‘건강 구독’의 끝은 어디인가.

종합비타민의 암 발생률 감소 효과는 약 8%, 성장호르몬 주사의 실제 효과는 1~2㎝ 남짓이다. 효과적이라고 말하기에도, 그렇다고 쓸모없다고 말하기도 뭣한 수치다. 효과가 100%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완전히 무용한 것도 아니고, 약간의 도움이 있다고 해서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현실의 수치는 대개 광고 문구보다 훨씬 작고 미묘하다. 이 때문에 책은 극단적인 거부도 맹목적인 신봉도 아닌 내 몸의 직관을 믿고, 영양소 단위가 아닌 사람 중심의 식생활을 회복하라고 권한다. 영양제의 효과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다방면에서 담아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단언하는 문장이 몇 없는 책에서, 힘주어 적은 문장 하나가 눈에 띈다. “적당히 먹는다면 세상에 나쁜 음식은 없다.” 320쪽, 2만 원.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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