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의를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존중은 과잉이 되었고, 배려는 의무가 되었다.
식당에서는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가 자연스럽고, 병원에서는 “보호자분께서 대기해 주시겠습니다”라는 말이 익숙하다. 존중을 표한다는 명목 아래 존칭은 겹겹이 쌓이고, 문장은 점점 비대해진다.
한국어의 높임법은 원래 관계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장치다. 나와 상대의 거리, 상황의 무게, 감정의 온도를 조정해 준다. 하지만 최근의 언어 환경은 ‘혹시나 무례해 보일까’ 하는 불안을 과도하게 반영한다.
단순히 “남편이 오셨어요”라고 말해도 될 자리에 굳이 ‘남편분’을 붙이고, ‘어르신’으로 충분한 상황에 또다시 ‘노인분’이라 덧대는 식이다.
존중은 필요하다. 그러나 존중이 과잉되면 형식만 남고 본질은 사라진다. 진정한 예의는 상대를 지나치게 높이는 데 있지 않다.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과도한 존칭이 아니라 분명하고 간결한 말 속에 담긴 성의와 배려가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
이제는 언어의 체면보다 관계의 실질을 돌아볼 때다. 과잉 존칭을 미덕으로 착각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고 균형 잡힌 말하기를 회복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소통을 한층 건강하게 만드는 첫걸음일 것이다.
김동석·서울 동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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