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진 피아니스트,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콩쿠르, 목적이 아닌 과정일뿐

한계 확인한 뒤 더 단단해져야

 

예술에 절대적 순위는 불가능

남는 건 기록 아니라 삶의 깊이

 

음악의 길 묵묵히 갈 수 있도록

결과보다 성장 지켜보는 사회

우리는 종종 “클래식 강국”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영재 강국”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들의 입상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꾸준히 성과를 내는 나라도 드물다. 분명 어떤 교육적 토양과 문화적 에너지가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과연 ‘강국’인가, 아니면 ‘성과에 익숙한 사회’인가.

우리는 왜 이토록 어린 영재의 탄생에 열광하는가. 아마도 그것은 한 개인의 재능에서 국가적 성취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예술 분야의 수상이 곧 국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내면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낸 세계다. 어린 연주자의 성공을 우리의 자랑으로 확장시키는 순간, 그에게 너무 많은 상징을 떠맡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콩쿠르는 필요악이다. 그것은 한 연주자가 자신을 세상에 소개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공평해 보이는 제도이다. 이름도 배경도 가리지 않고 무대 위의 연주로만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콩쿠르는 철저한 상대평가다. 누군가보다 더 눈에 띄어야 하고, 더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 한 음의 의미를 오래 고민하고 시간을 들여 음악과 함께 성숙해야 할 나이에, 다른 참가자보다 돋보이기 위한 전략을 먼저 고민하게 되는 구조다.

그 결과 연주는 점점 자극적으로 변한다. ‘더 빠르게, 더 크게’. 깊이보다는 즉각적인 효과가 우선된다. 연주자는 음악을 설득하기보다 심사위원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실전 경험은 분명 중요하다. 콩쿠르는 젊은 연주자에게 긴장 속에서 자신을 시험해 볼 무대가 된다. 실패 또한 값진 경험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콩쿠르는 어디까지나 지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며, 다시 돌아와 더 단단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상패는 기억 속에 남지만, 연습실에서 보낸 시간은 몸과 마음에 남는다.

최근 동계올림픽에서 메달과 함께 전해진 감동의 이야기들은 내게도 깊은 울림이었다. 스포츠와 공연예술은 전혀 다른 영역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을 단 한 번의 기회에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올림픽은 목표이지만, 콩쿠르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스포츠 선수에게는 활동해야 할 시기가 있다. 기록은 숫자로 남고, 승패는 명확하다. 그러나 연주자에게는 정해진 시간표가 없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더 깊은 음악을 보여주어야 한다. 음악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여정에 가깝다. 그래서 콩쿠르의 의미는 수상 그 자체가 아니라, 준비 과정과 이후의 시간에 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1960년 제6회 쇼팽 콩쿠르에서 1등을 수상한 뒤, 스스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한동안 무대에서 물러나 있었다. 더 단단해진 뒤에야 다시 세상 앞에 섰다. 반대로 반 클라이번, 쇼팽,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 등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수상하고도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연주자도 많다. 입상은 출발선이지 도착점이 아니다.

언론은 수상 소식을 대서특필한다. 또 한 명의 영재가 탄생했다는 부제와 함께. 그 관심과 응원은 고맙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보면, 수상이 곧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직 한창 성장해야 할 연주자가 너무 일찍 사회의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연주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의 앞날이 먼저 걱정된다. 때로는 박수보다 침묵이, 환호보다 기다림이 더 큰 힘이 된다.

본질적으로 예술에 절대적인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음색이 유난히 아름다운 연주자가 작은 실수를 했다면, 실수는 없지만 감동이 작은 연주보다 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그것은 취향과 관점의 문제일 뿐 우열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린 연주자에게 너무 빨리 묻는다. 몇 위를 했는지, 상금은 얼마였는지, 다음 콩쿠르는 무엇인지.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음악과 얼마나 오래 함께 걸어갈 사람인지, 한 번의 성공 후에도 다시 연습실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실패를 견디며 자기만의 소리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예술은 속도로 증명되는 영역이 아니다. 마침내 남는 것은 기록이 아니라 시간이고, 박수가 아니라 삶의 깊이다.

우리는 이제 콩쿠르 입상이라는 환상에서 조금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수많은 입상자가 평생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자신의 세계를 탐구할 수 있도록, 결과보다 시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수는 짧지만 음악은 길다. 메달은 순간이지만 예술은 생애에 걸쳐 완성된다.

어쩌면 진정한 예술 강국은 메달 수가 아니라, 긴 시간 끝에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진 예술가를 얼마나 길러 내느냐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성장은 언제나 조용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그 시간이 조용히 한 사람을 지켜 주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한 사람을 예술가로 빚어 가는 그 시간 말이다.

김대진 피아니스트,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대진 피아니스트,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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