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지정학 요충지를 일컫는 ‘세계의 목구멍’은 시대마다 달랐다. 과거에는 제국의 생명줄이던 식량 보급로가 중요했다. 로마는 이집트산 밀을 실어오던 시칠리아 섬 사이의 메시나 해협에 목숨을 걸었다. 중세 시대에는 단연 터키의 보스포루스 해협이었다. 우크라이나산 밀을 지중해로 빼내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 중심인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은 ‘세계의 심장’이라 불렸다. 오스만제국이 1453년 이 해협을 봉쇄하자 유럽은 중국·인도를 향하는 새 항로 개척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 부산물이 신대륙 발견이다.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와칸 회랑’도 유서 깊은 실크로드 요충지다. 고구려 출신 당나라의 고선지 장군이 서역을 정벌했을 때나, 현장법사가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갈 때도 이 좁고 긴 회랑을 지났다.

근대 이후에는 에너지 항로가 세계의 목구멍이 됐다.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 믈라카 해협이 대표적이다. 가장 위험하고 오래되기로는 호르무즈 해협만 한 곳이 없다.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이 해협은 10세기부터 인도의 향신료, 중국의 비단, 서양의 보석이 오가는 중심지였다. 여기에 눈독을 들인 포르투갈이 1507년 무력으로 호르무즈 섬을 점령했고, 1622년에는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가 영국 동인도회사의 도움을 받아 포르투갈을 몰아냈다.

이 섬의 운명은 1908년 페르시아만 남서부에서 처음 석유가 발견되자 다시 뒤집혔다. 1927년 이라크, 1938년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에서 잇달아 거대 유전이 발견되면서 최고의 요충지로 떠올랐다. 지금도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의 20% 이상이 인구 4000여 명의 이 작은 섬 옆을 통과한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해안 절벽에 지대함 미사일들을 숨겨 놓았다. 폭 33㎞의 좁은 해협에 기뢰를 부설해 선박의 운항 속도를 늦춘 뒤 적대국 선박만 골라 때리는 전술을 즐겨 구사해 왔다. 이번에도 차기 최고지도자 모즈타바가 “피의 보복”을 선언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는 모양이다. 에너지를 인질 삼아 전 세계 전쟁 비용을 올리고 미국을 압박하려는 작전이다. 목구멍이 막히면 세계 경제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곳을 통과하는 원유와 LNG의 80% 이상은 한국·중국·일본을 향한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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