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 악화로 정부가 비축유 방출과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들었다. 12일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공조해 비축유 2246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한 데 이어 13일 0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는 정유사 공급 가격을 보통휘발유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 이하로 제한하고 재정으로 그 손실을 메워주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검토를 지시한 후 불과 일주일 만에 시행된 것이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피의 보복”을 선언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지시하면서 브렌트유 가격이 종가 기준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2022년 8월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정부는 민생 고통을 덜기 위해 가격 안정 조치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 최고가격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극약처방이다. 그만큼 후유증도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가가 급등하면 대체로 수요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대중교통비 소득공제나 차량 10부제·홀짝제 운행 같은 에너지 절약이 먼저였다. 이후 유류세 인하→경유 차량 유가환급→취약층 보조금 지원→비축유 방출 등의 단계적 조치가 뒤따랐다. 이번에는 전격적인 유가 상한제로 정책 우선순위가 뒤집혔다.

고통스러운 수요관리보다 가격통제는 달콤한 유혹이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가계와 기업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에너지 사용량이 최상위권이다. 유가 상한제로 급한 불을 끌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초과수요 발생과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업이나 대형 차량을 이용하는 고소득층이 혜택을 더 누리고, 부담은 전체 납세자에게 돌아가는 역설을 피할 수 없다. 비상조치는 단기간에 끝내야 한다. 비상 시기에는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치를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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