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냄새 난다’ 김어준식 음모론
이젠 야권 아닌 여권 겨냥해
보완수사 조짐 보이자 터져
김씨 방송에서 탄핵 언급 나와
靑, 장관·수석 방송 출연금지
가짜뉴스 패가망신 사례 되나
지난 2020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전 의원의 지원금 횡령 의혹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했을 당시 김어준 씨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이 할머니가 쓴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 냄새가 난다”라고 했다. 김 씨가 어떤 음모론을 제기할 때 즐겨 쓰는 표현이 ‘냄새난다’는 것이다. 이 할머니는 “내가 바보냐. 치매냐”면서 “글씨를 구불구불하게 써서 수양딸에게 다시 써달라고 한 것뿐”이라고 했다.
이런 식의 음모론은 지난 10여 년간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흔들었고 엄청난 국민적 에너지를 소비시켰다. 부정선거 주장부터 천안함 좌초설은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까지 만들어 확신시켰다.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주장하며 국가기관이 고의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사드(THAAD) 배치, 코로나19의 의도적 방역 실패설, 청담동 술자리 등 1%의 사실에 99%의 가설을 섞어 그럴듯하게 음모론을 퍼뜨렸고, ‘아니면 말고’식 음모론은 좌파 진영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봤다.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명성과 100억 원대 빌딩 등 부(富)도 다 이 덕분이다. 이젠 여권의 대형 스피커로 자임하고 있는데, 그 화살이 이재명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김 씨가 돌연 진실 규명이라는 가치를 실현하자고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의도가 무척 궁금해진다.
이번에 장인수 전 MBC 기자가 특종이라며 유튜브에서 밝힌 ‘이 대통령 공소취소 거래설’은 예전에 주장해 왔던 음모론보다는 사실에 가까울 개연성이 크다. 여당은 “지라시보다도 못한 허위사실”이라고 발끈하지만, 김 씨가 굳이 여권을 향해 천안함·세월호류의 음모론을 펼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장 씨는 지난 9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정부 고위관계자가 고위급 검사들에게 ‘이 대통령 공소취소를 해달라’고 말하고 다닌다. 검찰은 ‘정부가 거래하고 싶어 하는구나’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 측근 인사가 검찰 고위층에 이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를 해주면 오는 10월에 생기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주겠다는 ‘거래’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장 기자가 큰 취재를 했다”고 칭찬했는데,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문제로 대통령과 여권 강경파 간의 신경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김 씨는 왜 장 씨에게 이런 내용을 방송하게 했을지 의문이 든다. 이튿날 출연한 전직 기자는 “이게 사실이면 탄핵감”이라고 한술 더 떴다. 탄핵이라는 금기어가 김 씨의 방송에서 나온 것이다.
대장동·백현동·위례·대북송금 사건 등 아직 1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에 대한 공소취소는 가능하다. 그러나 명백한 사유 없이 그렇게 하면 직권남용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사지휘권이 있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 고위층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때는 정 장관이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지시를 했고, 노만석 당시 총장 대행이 총대를 멨지만, 공소취소는 다른 차원이다.
김 씨는 여당 내 정청래 대표와 추미애·김용민 의원 등 강경파들과 가깝다. 이들은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줘서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최근 이 대통령이 SNS를 통해 강경파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 이런 폭로가 나온 것이 공교롭다. 보완수사권을 공소청에 주려는 이 대통령의 계획을 무산시키려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거래설이 나오면 청와대가 이를 밀어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태도 ‘거래설’을 부풀려 보완수사권을 좌절시키기 위한 김 씨의 음모론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강성 지지층 커뮤니티에선 ‘우리가 검찰 개혁하라고 이 대통령을 뽑았지 중도 실용하라고 뽑은 것은 아니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청와대가 장관 등에게 김 씨 방송에 출연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장관, 수석비서관, 친명 의원들의 발길이 벌써 뜸해지고 있다. 집권 1년도 안 돼 ‘이재명과 김어준의 밀월’이 깨지는 조짐이 보인다. 친명 지지층은 김 씨를 ‘반명수괴’라고 부른다. 이 대통령은 가짜뉴스를 하는 사람을 패가망신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거래설이 가짜뉴스라고 한다면 같은 잣대를 들이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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