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창극단 떠나 새 길 나선 소리꾼 유태평양
대학 졸업뒤 10년 간판스타로
직접 무대 만들고 싶어 퇴단해
“세계인 함께 즐기는 국악위해
판소리·대중음악 등 융합작업”
“창극단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소리꾼 유태평양(34·사진)은 15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월 말 국립창극단을 퇴단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2016년 창극단에 입단해 10년 가까이 간판스타로 활약해 왔다.
“가장 찬란했던 청춘의 시기를 창극단에서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에는 배우를 넘어 직접 무대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활동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음악감독과 창작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 앞으로 이런 작업들을 통해 예술적 영역을 확장해 보고 싶습니다.”
퇴단 이후에도 그는 국립창극단 무대에 오른다. 오는 19일부터 공연하는 창극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로 관객과 만난다. 조선 세조(수양대군)와 그의 권력욕으로 희생된 동생 안평대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아무래도 지난해 초연과는 마음가짐이 다르지요. 그때는 제 집에서 공연하는 편안한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객원으로 참여하다 보니 눈치도 좀 보이고(웃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긴장감이 생깁니다.”
이번 공연에서 호흡을 맞추는 ‘국악계 아이돌’ 김준수 역시 그와 함께 창극단을 떠났다. 창극단의 중흥을 이끌었던 두 사람은 나이도 비슷하고 주연을 번갈아 맡다 보니 라이벌로 비쳐지기도 했다.
“자신에겐 없으나 상대에겐 있는 장점을 잘 알고 있어, 서로를 세워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말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포옹하며 응원했습니다.”
유태평양은 국악인이었던 아버지 고 유준열 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접했고, 6세 때 3시간이 넘는 ‘흥보가’를 완창하며 ‘국악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느덧 소리 인생 30주년을 맞았다.
“1999년 초등학생 때 아카데미 시상식장으로 유명한 미국 LA 슈라인 오디토리엄 공연에서 6600석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던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통달 스승님과 고 성창순 스승님, 그리고 묵묵히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국악계의 중심에서 활동해 온 그는 개인의 성취를 넘어 국악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국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면 스타들이 꾸준히 배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국악인들이 넓은 시야를 가지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무대와 기회도 더 많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또한 국악을 우리만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발전시킬 방향을 모색하는 노력도 필요하지요.”
창극단을 떠나 창작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앞으로 판소리를 기반으로 한 대중음악과 현대적 이야기로 재해석한 새로운 판소리 등 다양한 창작 작업을 통해 국악의 가능성을 넓히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김지은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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