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형 정치부 차장

익숙한 길일수록 사람은 지도를 보지 않는다. 여러 번 다녀본 길이라고 믿는 순간 사람은 방향을 확인하는 일을 멈춘다. 그래서 길이 바뀌었을 때 더 쉽게 길을 잃는다. 지금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대북 정책을 담당하는 통일부의 시간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긴장은 빠르게 고조되고 있고, 그 파장은 미·중 전략 경쟁과 맞물려 동북아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란은 중국의 주요 에너지 공급국 가운데 하나다.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 의혹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이 중동에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배경에도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에서도 미묘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지난 13일 김민석 국무총리의 미국 방문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과 대화를 원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란 공습으로 중동 긴장이 고조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거론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워싱턴이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다시 탐색한 것이란 관측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한반도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포석이자,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 성과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도 있다.

주목되는 것은 그 직후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단행했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면 통상적인 군사 도발처럼 보이지만 시점은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협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국면에서 저강도 군사 행동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온 전례가 많다. 긴장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도 협상 환경에서 자신들의 전략적 가치를 드러내려는 계산이다. 그럼에도 이번 미사일 발사에 대해 대통령실이 즉각 규탄 입장을 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통일부의 정책 인식은 크게 달라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004∼2005년에도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정동영 장관은 최근까지도 남북 대화 재개와 9·19 군사합의 복원의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왔다. 북한의 군사 행동을 긴장을 높이는 도발로 보기보다 협상 국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호로 해석하려는 시각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접근이다. 그 결과는 ‘이란 핵위기’의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북한의 전략은 이미 다른 단계로 이동했다. 북한은 최근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남북관계를 더 이상 민족 내부의 문제로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남북관계를 민족 문제에서 국가 간 안보 문제로 재정의하겠다는 신호다. 문제는 상대가 규칙을 바꾸고 있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경험을 기준으로 상황을 해석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세는 변했는데 정책 인식은 그대로라면 현실을 제대로 읽기 어렵다. 익숙한 길일수록 사람은 지도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길이 바뀌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시 지도를 펼쳐 보는 것이다. 이전에 겪어본 상황이라고 믿으면 판단은 느슨해진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예전의 그 상황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정선형 정치부 차장
정선형 정치부 차장
정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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