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서재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릿속이 바빠진다. 초침이 흘러가듯 수많은 작가의 이름이 째깍째깍 지나가는 와중에도 반드시 멈추게 되는 이름이 있으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다. 1956년생 미국 태생인 작가는 ‘올리브 키터리지’ ‘버지스 형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등 주로 사람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을 써왔다. 이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적 세계관을 이루는 주요 캐릭터들로, 커다란 세계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최근작 ‘이야기를 들려줘요’에서는 그간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축제가 벌어진다. 이제 막 아흔에 접어든 올리브 키터리지는 그보다 스무 살쯤 어린 작가 루시 바턴과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인생의 이러저러한 굴곡을 통과해온 두 여성의 만남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처음에는 화자와 청자가 명백하게 구분되는 듯했으나 어느 순간 그 구분이 무용해진다. ‘대화’의 시작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이 소설에 반했다. 그들의 대화에는 오직 두 사람이기에 확보되는 내밀함이 있고, 타인의 삶에 가타부타 관여하지 않으려는 성숙한 태도가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세상을 배워 경험치를 지녔음에도 그것을 설득이나 타협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 태도란 얼마나 귀한지.
두 사람이 공유하는 이야기들은 지금껏 한 번도 발설되거나 기록된 적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대화의 과정을 거치며 최초의 씨앗은 줄기와 잎, 꽃과 계절을 거느린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스스로의 삶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건네고 싶다. 책의 이야기는 당신이 이미 가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당신이라는 존재 역시 한 권의 책으로 적힐 만큼 충분하고 아름다운 재료라는 뜻이니까.
그렇다고 감동만 있는 책이냐 하면, 아니다. 책의 또 다른 축에는 밥 버지스가 추적해가는 살인사건이 있어 극에 서스펜스를 더한다. 씨줄과 날줄이 엮이듯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미스터리는 해소되고 숨은 진실이 열린다. 인간이 주지 못하는 위로를 책이 줄 수 있다고 오래 믿어온 사람으로서 허구의 세계를 이만큼이나 사실로 믿으며 사랑하게 되기란 드문 경험이다. 당신에게도 이 사랑을 꽃다발처럼 건네고 싶다.
안희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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