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석좌교수
봄이 오면 마음이 설레는 건
신진대사 활발해지기 때문
기억력·창의력 등에도 영향
행복감·친밀감 크게 높아져
미룬 일 하고 새 사람 만나고
봄의 설렘에 몸을 맡겨 보자
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봄이다. 봄의 생동감은 진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다섯 살 유치원에 입학하던 때부터 이 나이가 되도록 봄은 늘 내게 새 학년, 새 학기를 가져다준다. 학생 신분으로, 그리고 교수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새 학기를 맞이한 덕분인지 봄은 새 얼굴, 새 학기, 새로운 연구와 도전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설렘을 선물한다. 어릴 때 새로 산 노란색 봄 운동화와 분홍색 책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서 새 학기를 기다렸던 그 아득했던 기억이 봄기운과 함께 늘 밀려온다. 이번 학기에는 더 열심히 강의하고 더 많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 뭔가 다 잘될 것 같은 기대감 말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캐서린 밀크먼은 이를 두고 ‘신선한 시작 효과’(Fresh Start Effect)라고 명명했다. 특정한 날짜나 사건을 기준으로 과거의 자신과 단절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심리적인 추진력을 얻는 현상을 뜻한다. 대개는 새해 첫날이나 졸업, 입사와 같은 인생의 전환 시기에 그러한 시작의 신선함을 느낀다. 일반인들과 달리 내게는 3월이 그런 시기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부담감을 밀어낼 만큼 봄의 생동감이 크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봄의 설렘은 우리가 가진 느낌의 오귀인(誤歸因·Misattribution)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신체적·생물학적인 각성을 인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기온이 상승하고 일조량이 늘어나며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는데, 이때 우리 몸은 심박수가 미세하게 상승하고 에너지가 고양되는 ‘각성 상태’에 놓이게 된다.
사람의 뇌는 원래 겨우내 낮은 일조량에 적응하기 위해 도파민 수용체의 밀도를 높여 민감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봄이 되어 갑자기 햇빛이 많이 쏟아지면, 민감해진 수용체들이 적은 자극에도 강하게 반응하게 된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폭발하고, 높아진 기온은 혈류에 산소를 더 많이 공급해 뇌 활성 정도가 높아진다. 심장박동수 증가와 에너지 상승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의욕이 생기고 기분이 들뜨는 ‘각성 상태’에 진입한다.
우리의 뇌는 이 알 수 없는 신체적 고양감을 설명하기 위해 주변 환경에서 단서를 찾기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진 벚꽃, 따스한 햇살, 활기찬 거리의 풍경을 보면서 ‘봄이 와서 설렌다’고 여긴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며 높아진 심박수와 에너지를 ‘행복’이나 ‘희망’으로 인식하게 되는 이유이다. 심지어 이런 기분은 전이가 되어 대인 관계를 활발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새로운 연인을 찾게 되거나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로서 말하자면, 봄에 만난 인연은 진정한 희망이나 행복, 진정한 사랑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민감해진 신체 수용체들이 봄 날씨의 자극으로 민감해진 탓에 이 설렘을 행복감이나 새로움으로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계절과 기후, 신체적 각성에 기인한 설렘을 상대가 매력적이라 끌리는 것이고,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정말 봄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잘못된 판단 속으로 뛰어들게 하고 또 들뜨게 하는 것일까. 새로운 시작과 설렘이 가져다준 이 에너지가 사실은 그저 봄날의 아지랑이일 뿐이란 말인가.
다행스럽게, 진짜인 것도 있다. 실제로 봄은 우리의 기억력과 창의력 등에 영향을 끼친다. 봄이 되어 일조량이 늘어나면서 햇빛이 망막을 통해 뇌의 시상하부의 교차상핵(SCN)에 전달된다.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고 세로토닌 합성을 가속화하면서 보상·동기·탐색 행동을 자극하게 한다. 활성화된 도파민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감이나 친밀감이 증폭된다. 단순히 이러한 정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햇빛은 우리의 인지적 능력까지 변화시킨다. 실제로 좋은 날씨에 야외 활동을 한 사람들은 지능검사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한다. 특히, 작업기억(Working Memory) 용량이 늘어나 기억력이 향상된다.
가을, 겨울과 상대적으로 대비가 커지게 되어 봄에는 우리의 뇌가 반등(rebound)하면서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된다. 기억력뿐만 아니라 창의적 사고 또한 향상된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정서는, 좁은 관점을 갖게 하여 바로 눈앞에 것에만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인지 양식을 유발한다. 그 반면에 긍정적인 정서는, 더 확장된 시야를 갖게 한다. 좁은 시야를 벗어나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보는 인지적 융통성이 창의력을 끌어낸다. 한마디로 뇌가 관대해진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고, 변화에 대한 높은 적응력 덕분에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용감하게 시도하고, 능동적으로 탐색하게 한다. 이렇게 봄은 정서적인 즐거움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인지적 자원을 확장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기억력 및 창의력을 키운다.
단지 봄날의 아지랑이가 아니라 실제로도 긍정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좀 더 적극적으로 이 봄의 설렘에 충실해 보면 어떨까? 계속 망설이기만 하면서 하지 못했던 결심들을 시도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간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하며 봄의 설렘에 몸을 맡겨보는 거다. 찬란한 만큼 짧은 이 봄이 사라지기 전에 ‘신선한 시작’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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