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경 경제부장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화두

분업과 세계화 역사 속 사라져

미·중 신냉전 시대 본격 전개

 

미국-이란 전쟁도 같은 맥락

AI 등 기술 전쟁 양상도 변화

탈중국 경제 시스템 박차 필요

20세기 말(1999년) 미국의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냉전 종식 이후 새로 열린 세계화 시대를 설명하는 책이다. 렉서스는 일본 토요타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로 세계화·현대화·기술·효율성·번영의 상징이다. 반면, 올리브나무는 뿌리 깊고 오랜 세월 자라는 나무로 정체성·전통·공동체·민족·종교 등을 나타낸다.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과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글로벌 자본이 가장 싼 인건비와 제조 비용을 찾아 지구 곳곳을 새 공급망으로 조직하고 일원화된 시장경제가 적용된 세계화 시대는 약 30년 동안 지속됐다. 중국은 세계화 시대의 떠오르는 스타였다. 우리 역시 일본(소재·부품·장비)·한국(중간재)·중국(완제품) 등 동아시아 분업체제에 힘입어 눈부신 경제 성과와 그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거뒀다. 하지만 이제 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해 번번이 시비를 걸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장 이후 미국 역시 중국을 주적(主敵) 명단에 올리고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중 갈등을 핵심으로 한 신냉전이 새로운 키워드가 됐다. 미·중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 기술 경쟁과 원자재 등 글로벌 공급망 분리 작업이다.

미국·이란 전쟁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즉 세계화 이후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직접 맞붙은 것은 아니지만, 이란이 중국·러시아·북한 등과 함께 대표적인 반미 전체주의 연합의 주요 구성원인 점, 중국과 이란이 원유 공급·일대일로 사업 등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중국에 대한 미국의 우회적 타격도 된다. 더욱이 전쟁 과정에서 AI 활용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점 역시 향후 미·중 간 AI 경쟁 양상을 가늠케 한다.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석유 등 에너지 분야에서 중동 의존도가 특히 높은 우리나라 경제적 영향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전쟁이 3개월 이상 장기화할 경우 당초 경제성장률보다 0.3%포인트 하락이 예상되고 1년 장기화 시 0%대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등 한국 경제가 고유가·고환율·저성장의 복합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 전략 비축유 방출, 유류세 인하, 원전·석탄 발전소 가동률 제고 등을 시행했거나 추진 중이지만 전쟁 장기화 시 효과는 제한적이다.

결국,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버티는 것 이외에는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다만, 즉시 처방과 함께 이번 전쟁을 계기로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박차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경제 체질 개편 방향은 탈(脫)중국이다. 미국·이란 전쟁이 미·중 갈등의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됐다고 할 때, 이참에 미국 주도 글로벌 공급망의 필수 플레이어로 우리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아세안·인도·유럽·중동·중남미 등 신시장 개척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 의존 원자재와 생산기지를 분산하는 공급망 재편에 공을 들이고 반도체 등 핵심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란 전쟁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빗대 네이밍한다면 ‘팔란티어와 뒤틀린 올리브나무’라 할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 우파를 상징하는 미국의 데이터 분석회사 팔란티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다양한 군사 작전이나 전쟁에 관여하면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그렇다. 눈부신 기술 발달이 렉서스 자동차처럼 인간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에 기여하는 대신 전쟁 수행 능력에 압도적인 권능을 부여하는 현실을 지켜보는 건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이제 받아들여야 할 조건이 됐다. 한편,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올리브나무는 세계화에 포섭되지 않는 인간다움을 나타냈다지만 정체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인권을 경시하는 전체주의로 흐르기 쉽다. 북한, 중국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세계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글로벌 단일 시장에서 평화롭고 자유롭게 교역하면서 풍요를 구가하던 삶은 더는 가능치 않다. 허리띠를 조일 때다.

유회경 경제부장
유회경 경제부장
유회경 기자
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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