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BTS ‘아리랑’
욕망은 숫자로 말한다. 등수는 작고 액수는 크길 바란다. 야금야금 등수가 올라가고 슬금슬금 지갑이 열리는가 싶더니 마침내 충무로에선 ‘왕과 사는 남자’가 ‘왕의 남자’를 제쳤다. 흥행의 구름이 광화문까지 뻗친 걸까. 이번엔 ‘왕과 노는 남자’ 이야기다.
천만은 마법의 숫자다. 위험천만하기도 하고 천만다행이기도 하다. 천만의 선택(공감)은 대단한 경사지만 천만의 말씀(이견)에도 귀를 닫아선 곤란하다. 나의 첫 직업은 교사였다. 모교에서 2년 반 동안 국어를 가르쳤다. 후배이자 제자인 배우 최민수는 함께 출연한 방송(JTBC ‘행쇼’)에서 증언했다. “국어 선생님이란 분이 팝송 가사를 칠판에 쓰고 같이 불렀다니까요.” 나도 할 말이 있다. 구개음화 두음법칙은 잊어버려도 그때 그 가사는 기억나지 않는가. 나는 음표를 가르친 게 아니라 목표(주제)를 전달했다. 지금 만나도 나는 선창하고 제자들은 합창한다. 음악은 무심결에 우리를 ‘그날 그 눈물 없던 때’(가곡 ‘가고파’)로 데려다준다.
조금은 소란스럽던 그 교실의 느낌을 되살려 방탄소년단(BTS·사진)의 광화문 공연을 정산하는 일도 흥미로울 성싶다. 우선 BTS 공연을 일등석에서 직관한 세종의 심경은 어땠을까. 지금부턴 이른바 ‘소설 쓰시네’ 분위기로 전환한다. 누군가 왕의 심기를 건드린다. “한글을 창제하신 분 앞에서 영어 일색으로 노래하다니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왕이 반응하길 “무엄하다. 당장 멈추어라” 하신다. 풍악을 멈추란 얘기?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속 좁은 소견을 버리란 탄식이다.
세종은 소통을 소중하게 여겼다. 직접 못 만나더라도 백성의 고충을 글자로 읽고 싶었다. 그런데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들은 문서를 작성하지 못한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어려움을 겪으니 전국적으로 한문 교육을 활성화하라.” 만약 이랬다면 지금 그 자리에 앉아계실 수 없었으리라. 왕은 인재들을 모아 드림팀(집현전)을 구성했고 3년에 걸쳐 새로운 글자를 창안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솔선수범 시를 지어 유포했다. 시만 지은 게 아니라 작곡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한마디 말이 노래가 되고 시가 되는 극적인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백성의 마음에 주단을 깔아준 노래의 제목이 바로 여민락(與民樂)이다.
설마 왕이 싱어송라이터? 엄연히 기록(세종실록)에 남아있으니 그걸 뒤집을 방도가 없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노래를 만든 재능보다 노래를 지은 취지가 가상하기 때문이다. 세종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이순신 장군의 사례도 비슷하다. 톱과 망치로 거북선을 직접 제작했다기보다는 그걸 만들어 활용코자 한 목적(호국)과 실천(승전)을 통해 나라를 구한 분 아니신가. 여민락은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즉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백성을 도구가 아닌 친구로 여겼으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우리끼리만 통하면 그건 소통(疏通)이 아니라 소통(小通)이다. 그날 광화문 광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다른 언어를 쓰는 종족이 한자리에 모여 사해동포(cosmopolitan)를 연출했다. 지구 한쪽에선 탄환이 빗발치는데 다른 한쪽에선 탄성이 교차한 형국이다. 이거야말로 세계시민이 평화를 갈구한 21세기 여민락(세계인의 기우제) 아닐까.
왕으로 시작했으니 왕으로 마감하자. 홍사용(1900∼1947)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로 끝난다. 진정한 광대는 왕의 남자(왕을 홀리는 남자)가 아니라 모두가 왕이 되어 즐기는(왕과 함께 노는) 축제를 설계한다. 축제는 끝났다. 축제가 끝나면 숙제가 남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광화문 세 글자만 주문처럼 떠올리자. 어둠에서 빛으로(光) 야만에서 문화로(化) 벽을 헐어 문으로(門).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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