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1911년 영국 해군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의 선택이 석유의 운명을 갈랐다. 웨일스의 안정적인 석탄을 버리고 멀리 페르시아만에서 수입하는 석유를 때는 군함으로 바꾼 것이다. 수병의 25%를 차지했던 화부(火夫)가 줄었고, 최고 속도도 25노트로 4노트 올라갔다. “위험하지만, 그 보상은 해상권 장악”이라던 처칠의 도박이 성공했다. 안정적 석유 공급을 위해 앵글로-페르시안의 지분 51%도 사들였다. 오늘의 BP다.

1951년 위기가 닥쳤다. 이란 민족주의자 모사데크가 총리에 올라 당시 영국 소유의 세계 최대 아바단 정유소를 국유화한 것. 영국은 해군을 동원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이란산 석유 불매를 강요했다. 이탈리아 유조선 로즈메리호를 나포해 “우리의 장물”이라며 석유를 압수했다. 선박과 화물을 모두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석유 수출이 99% 급감했다. 이란 경제는 붕괴 위기에 몰렸다.

당시 일본은 석유에 허덕였다. 패전 이후 미·영·프랑스 석유 메이저인 ‘세븐 시스터스’로부터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공장은 툭하면 멈춰 섰고, 밤엔 촛불을 켜야 했다. 암시장에서 7배 웃돈을 주고 기름을 구했다. 이때 일본 정유사 에네오스(ENEOS) 창업주인 이데미쓰 사조가 몰래 해상 봉쇄를 뚫고 닛쇼마루호를 아바단에 보냈다. 호르무즈 해협에선 영국 해군 레이더를 피하기 위해 밤에 불을 끈 채 해안선에 바짝 붙은 위험한 항로를 헤쳐 나갔다. 닛쇼마루호가 2만t의 휘발유와 경유를 가득 싣고 뜨거운 환영 속에 가와사키항으로 돌아왔다. 단번에 일본의 석유 가격이 30% 낮아졌다. 영국은 ‘장물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일본 법원은 냉담했다. ‘이란 국유화 절차에 보상 규정이 포함돼 있는 등 국제법상 완전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중립을 지키던 미국은 1953년 이란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비밀공작에 들어갔다.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고 팔레비 국왕을 세우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석유 패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변곡점이었다. 석유의 역사를 다룬 ‘황금의 샘’에서 대니얼 예긴은 이렇게 썼다. ‘에너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 세계가 떨고 있다. 다시 한번 글로벌 패권이 요동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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