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석 사회부 부장

“범죄피해자들의 얘기는 빠진 채 논의돼 화가 납니다.” 2022년 부산 돌려차기 강간·살인미수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는 지난해 9월 세미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검찰개혁에 대해 “왜 정부가 바뀔 때마다 그들만의 목적 때문에 변화가 생기고 국민이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형사사법제도 개편의 직접 영향을 받는 범죄피해자를 비롯한 국민 목소리가 ‘묻지 마 검찰개혁’에서 빠졌음을 꼬집는 말이었다. 세종시 집단성폭행 사건 피해자 정연수(가명) 씨도 “잘못된 방향으로 개혁되면 무너진 사람들의 삶은 되돌릴 수 없고 구제할 수도 없기에 속도를 내는 것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여성 등을 무료로 법률 지원하는 공익변호사 활동을 이어온 김예원 변호사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설치법안 국회 강행 처리를 앞둔 17일 “이제 절대 범죄피해 당하지 말라. 검사가 무료로 모든 사건을 송치받아 검토해주고 보완수사해주던 시절은 끝났다”고 절망했다.

법 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편 3법 역시 범죄피해자들에게 악몽이다. 4심제 역할을 하는 재판소원이 시행 1주일 만에 106건 접수된 가운데 유튜버 ‘쯔양’을 협박해 수천만 원을 갈취한 혐의로 실형 확정된 유튜버 ‘구제역’은 불복절차를 밟겠다고 예고했다. 쯔양의 법률대리인은 “확정판결로 끝났다 믿었던 고통이 재판소원으로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한숨 쉬었다. 더 큰 문제는 법 왜곡죄다. 법 시행 후 정치사건뿐 아니라 성폭행·보이스피싱·전세사기 등 숱한 형사사건 가해자들이 법 왜곡죄를 거론하며 판·검사, 경찰을 위협하는 상황이 현실이 됐다. 서울경찰청은 23일 기준 법 왜곡죄 사건 8건을 수사 중이다. 일선 판·검사들의 법 왜곡죄 대응 전략은 ‘몸 사리기’다. 안미현 대전지검 천안지청 부부장검사는 “가보지 않았던 매일 칼퇴(정시 퇴근)의 삶을 이제 좀 가보라는 의미인가”라고 한탄했다.

민주당 주도로 20일 공소청법·21일 중수청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지난해 시작된 여당발 검찰·사법개혁 속도전이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형사소송법 개정 사안인 공소청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부여할지 여부만 논의가 남았다. 하지만 1987년 개헌 후 39년간 유지된 형사사법체계가 반년 만에 전면 개편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 숙의는 실종됐고 위헌·위법 시비, 사법부 독립 침해 등만 확인됐다. 민주당 내에서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강경파 몇이 주도한 논의에서 검찰·법원 의견은 일체 무시되고 배제됐다. 무엇보다 형사사법제도 개편이 야기할 수사·재판 지연의 최대 피해자인 범죄피해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2024년 기준 검찰에 접수된 형사사건은 171만 건에 이른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범죄피해자가 바라는 진짜 개혁은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재판을 통해 죄지은 만큼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법원 죽이기’로 일관한 민주당발 검찰·사법개혁은 가해자·가진 자의 불복수단은 늘리고, 피해자는 수사·재판지옥에 빠트렸다는 평가다.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사회적 약속이 무너지면 결국 개혁도 실패한다.

김남석 사회부 부장
김남석 사회부 부장
김남석 기자
김남석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