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BTS 컴백 공연 논란의 아쉬움

국가적 메가 이벤트화의 결과

그럴수록 축제의 의미 사라져

 

넷플·한국과 서울 이미지는 업

BTS 리스크 논란 책임 떠안아

이제는 아티스트를 자유롭게

한국은 K팝을 비롯한 K콘텐츠를 ‘국가 브랜드’의 도구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히 문화는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같은 국가적 행사에 스타를 앞세우는 등 공공외교 수단으로 편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소프트파워에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단기적으로 경제·외교적 이익은 커질지 몰라도 문화의 자율성은 줄어든다. 실제로 K콘텐츠에 ‘정부의 기획·주도’ 이미지가 강하게 덧씌워져 한동안 세계 무대에서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역효과도 낳았다.

이번 방탄소년단(BTS) 광화문 공연을 둘러싼 논란은 ‘국가 브랜드 프레임’이 도시 공간과 치안, 시민 권리의 층위까지 파고들어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논란의 핵심은 시민의 공간인 광화문광장이 특정 공연을 위해 사유화됐다는 비판, 이를 명분으로 시민을 통제 대상으로 취급한 과잉 치안에 대한 문제 제기로 압축된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언론이 BTS 노믹스를 내걸고 ‘성공적이고 감동적 공연’이라는 평을 쏟아내는 동안,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거친 불만이 쏟아졌고 일부는 BTS와 공연에 대한 비난으로 비화됐다. 결국, 리더 RM이 나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기획사 입장에선 광화문광장을 탐낼 수 있다. BTS 컴백 앨범 ‘아리랑’의 태그라인은‘Born in Korea, Play for the World’였다. 이미 세계적인 이들이 ‘Born in Korea’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소로 광화문을 떠올릴 만하다. 주말마다 시위가 벌어지는 공간에 세계적 그룹이 공연하는 것을 사유화라 할 순 없다. 하이브 방시혁 의장은 “4년 만의 컴백이니 한국,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 공간인 광화문”을 제안했고,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차례로 승인했으며 서울시는 공식 후원을 선언했다.

문제는 넷플릭스가 190개국에 생중계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된 듯하다. 정부, 서울시, 하이브의 각자 계산과 욕망으로 BTS 공연은 국가적 메가 이벤트, 올림픽에 버금가는 행사로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하지만 그 끝엔 핼러윈 참사의 트라우마가 있고, 공연 직전 캡슐 호텔 화재 사고가 터졌다. 여론은 일제히 ‘안전’을 외쳤다. 결국 ‘초대형 국가행사’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 BTS도, K팝도, 아미도, 축제의 의미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최고의 통제 시나리오가 들어섰다. 아마도 많은 사람은 2002년 월드컵 응원 장면 같은 열기를 상상했겠지만, 화면 속 광화문은 공식 국경일 행사에서나 볼 법한 의자 배치와 군데군데 빈 풍경이었다. 너무나 부끄러운 그림에 이러려고 이 요란을 떨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이러니하게 국내에서 논란이 벌어진 사이 세계는 BTS 앨범과 공연을 높게 평가하며 이를 즐겼다. 빌보드부터 가디언까지 BTS가 자신들이 만든 K팝 세계화의 다음 국면에서, 서구 팝 문법 대신 한국적 정서와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식을 택했다고 호평했다.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글로벌 히트 이후 K팝이 빠르게 서구화되는 상황에서 K팝을 재정의하며 자기만의 문법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넷플릭스가 100억 원대 제작비를 투자해 생중계하면서 지식재산권(IP)은 하이브가 갖는 빅 딜도 벌어졌다. 플랫폼이 왕이던 시대에서 콘텐츠를 가진 쪽이 우위에 서고, 라이브가 공연계 공식 문법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광화문에서 열린 것이다.

손익 계산을 해보면 넷플릭스는 BTS 라이브로 77개국 1위를 싹쓸이했으니 승자, 광화문 공연이 전 세계 언론에 도배됐으니 한국과 서울시는 엄청난 홍보효과를 얻었다. 하지만 긴 준비 끝에 멋지게 첫발을 내디뎠어야 할 BTS는 사과를 했고, 지켜본 아미는 마음이 상했으며, 시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K팝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세계적인데, 이를 대하는 방식은 여전히 ‘국가 이벤트’ 틀에 갇혀 있지 않은지 자문해본다. 문화 위에 국가와 공권력 그림자가 어른거릴수록 아티스트와 시민의 자유는 좁아지고, 이로 인해 문제가 되면 손해는 개인에게 돌아간다. 광화문 논쟁은 이 간단한 명제를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증명했다. 우리도 문화 국가의 품위를 보이자. 아티스트를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라.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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