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이의 올댓클래식 -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비하 발언 논란
공연계 대수롭지 않다 말하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위치 부각
예술가치 관심·효율로 환산 탓
클래식은 강인한 생명력 가져
최근 티모시 샬라메(사진)가 구설에 올랐다. 그가 오페라와 발레를 향해 던진 한마디는 꽤 직설적이다. “발레나 오페라처럼 ‘이걸 좀 살려야 한다’고 외쳐야 하는 분야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거든요.” 덧붙인 말은 더욱 인상적이다. “아, 이 말로 시청자 14센트어치 잃었겠네.”
이중으로 문제적인 발언이다. 예술을 폄하하고 그에 따를 비판마저 “14센트어치”라는 푼돈으로 축소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우리 시대가 예술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는 오페라와 발레에 대한 거부감일까. 혹은 예술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반감(cultural backlash)’인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이 곧 계급”이라고 했다. 오페라 극장 1열이나 붉은 공단으로 감싼 박스석에 앉는 것이 아비투스, 즉 관습화된 취향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샬라메가 체현하는 아비투스는 전혀 다르다.
샬라메에게 오페라와 발레는 사라져 가는 장르이자,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 옛 유산이다. 공연 예술을 향한 비릿한 냉소와 대중의 욕망에 발맞추는 감각, 그것이 그가 휘두르는 강력한 문화 자본이다. 샬라메는 공연계를 비하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여, 역설적으로 자신이 시장의 정점에 있음을 드러냈다. 오페라와 발레는 그의 ‘힙함’과 ‘쿨함’을 돋보이게 할 구식 배경화면에 불과했던 셈이다.
이 소동은 18세기 프랑스를 뒤흔든 음악적 대립이었던 일명 ‘부퐁 논쟁’을 닮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장엄하고 화려하며 신화적 주제를 다룬 오페라, 이른바 서정 비극(Tragedie en musique)이 주류였다. 이때 이탈리아의 가볍고 친근한 오페라 부파(Opera buffa)가 수입되자, 프랑스 지식인들은 프랑스파와 이탈리아파로 양분되었다.
부퐁 논쟁의 핵심은 이것이다. “삶과 동떨어진 근엄하며 지나치게 진지한 예술이 무슨 소용인가? 누구나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것이 진짜다.” 이 해묵은 질문은 시대만 바뀐 채, 비슷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 이번 샬라메의 실언은 이와 유사한 연장선에 있다.
그렇다면 오페라나 발레는 정녕 구걸 중인가. 샬라메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그것은 우리가 예술 가치를 오로지 관심과 효율이라는 가치로 환산하기 때문이다. 수십, 수백 명의 가수와 합창단과 스태프가 동원되고, 대규모 후원과 펀딩이 필수적인 고전 예술은 비경제적이고 구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예술은 본래 가성비로 따질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이들을 지켜온 이유는, 효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희로애락, 사랑과 우정, 정의와 숭고, 질투와 미움 등 인간 존재의 모순과 갈등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공연 예술은 ‘효용’이라는 언어로 쉽사리 치환될 수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무용해 보이는 것을 위해 때론 목숨까지 내어놓는가. 그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를 치열하게 묻고 드러내는 장르가 오페라와 발레이기 때문이다.
샬라메는 지금 스크린 위에서 빛나고 있다. 주연을 맡은 ‘듄: 파트3’도 하반기 개봉예정이다. 그러나 그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 오페라와 발레는 샬라메가 은막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것들의 유구하고도 강인한 생명력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과 이미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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