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은 좋아하지만 스팸을 싫어하면 한국인이고, 둘 다 싫어한다면 미국인이다. 이리 쓴다면 헷갈릴 수밖에 없지만, 통조림 햄의 제품명과 여기서 유래한 인터넷 용어 ‘Spam’이니 어쩔 수 없다. 돼지고기를 햄으로 가공해 깡통에 담은 스팸은 죄가 없다. 비상시에 어쩔 수 없이 먹든 별미로 여기며 먹든 자유다. 그러나 영국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원치 않는데 계속 반복해 나오는 음식으로 소개되면서 스팸은 인터넷 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메일이나 메시지로 광고나 쓸모없는 문구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온다. 답글 기능이 있는 인터넷 문서에는 자동으로 댓글이 생성되고 요즘에는 사람이 아닌 ‘봇’이 메시지를 마구 뿌린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필요한데 마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썼던 사례에 착안해 스팸을 다른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 햄을 만든 회사로서는 억울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광고 효과가 있었으니 겉으론 싫은 척해도 속으론 쾌재를 부를 일이다.

서양인들은 스팸을 싫어한다지만 우리는 아니다. 흰밥에 짭짤한 반찬이 필요한, 군부대에서 나온 햄과 소시지마저도 찌개로 끓여 먹는 우리에게는 별미일 수 있다. 단백질이 귀하던 시절의 영향이 남아 있어 아직도 명절 선물로 손에 꼽히니 나쁠 것이 없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다양한 스팸 요리를 개발하는 것도 우리 마음이다.

스팸은 좋아할 수 있지만 슬롭(Slop)은 절대 아니다. 슬롭은 본래 음식 찌꺼기나 돼지 먹이를 뜻하니 결코 좋아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은 주로 인공지능(AI)이 생성해 내는 과장과 허위 정보, 근거 없는 음모론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인다. 생각해 보면 서양인들이 싫어하는 스팸을 좋아하는 것도 결국 우리의 선택이었다. 혹시라도 슬롭의 자극과 쾌감에 마비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정치 관련 슬롭도 마찬가지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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