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

(19) 울산 참기름 기업 ‘옛간’ 대표 박민

 

고래 기름 짜내던 원리서 착안

창업주부터 저온 찜 방식 고수

아버지가 이어 받아 규모 키워

 

손자 대물림 뒤 브랜드 마케팅

전국 판매점 260개 매장 납품

입소문 나며 지난해 매출 59억

 

홍콩 이어 美·英 등 문의 쇄도

지역 깨 사들이며 상생도 앞장

박민 ‘옛간’ 대표가 지난 25일 울산 울주군 상북면 공장 내 매장에서 옛간 참기름의 역사와 고소함의 비결을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박민 ‘옛간’ 대표가 지난 25일 울산 울주군 상북면 공장 내 매장에서 옛간 참기름의 역사와 고소함의 비결을 설명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울산=곽시열 기자

영남알프스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울산 울주군 상북면의 한 작은 공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며 입맛을 돋웠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즐기는 고소함의 결정체 참기름 향이다. 하지만 이곳의 참기름 향기는 여느 방앗간과는 깊이가 다르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손자로 이어지며 3대째, 무려 67년 동안 쉼 없이 피어오른 세월의 향기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가업의 세 번째 주역인 박민(46) ‘옛간’ 대표의 인생 성공스토리가 한창 쓰이고 있다. 한때 위기에 내몰려 가업을 포기하려고까지 했던 박 대표는 꿋꿋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옛간을 국내는 물론 세계적 참기름업체로 키워가고 있다. 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맛과 경험, 그리고 최고의 맛을 찾아내려는 그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최근 공장 입구에서 생깨를 입에 넣고 입맛을 다시는 박 대표를 만났다. 그는 “기계적인 수치보다 생깨를 직접 씹어보고, 최적의 고소함을 찾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소중한 경험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1959년 고래에서 시작된 3대의 참기름 역사= 옛간의 뿌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이자 박 대표의 할아버지인 박일황 옹은 장생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어느 날 참깨 농사를 짓는 아내를 돕기 위해 참기름 추출 기계를 만들고, 교사 첫 부임지인 울산 북구 정자동에서 참기름 방앗간을 운영했다. 할아버지의 참기름 공장 영감의 원천은 당시 울산의 상징이었던 고래였다. 거대한 고래의 지방층에서 기름을 짜내던 틀의 원리를 참깨에 적용한 것이다. 이 원리는 저온에서 증기로 찌듯 압착해서 만든 ‘찜누름’ 방식으로, 일반적인 참기름이 고온에서 깨를 태우듯 볶아 만드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초창기에는 착유기 1대로 참기름을 짰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농사지은 참깨로 세척·볶음·착유 과정을 거치며 참기름을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옛간은 1988년 창업자의 아들인 박영훈 2대 계승자가 이어받았다. 가내수공업 단계에 머무르던 옛간이 어엿한 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 이 시기다. 나무 찜 누름틀을 개량해 압착, 온도 조절 기능을 더한 것도 아버지다. 이어 2011년부터는 아버지의 권유로 3대 계승자 겸 현 박 대표가 옛간을 물려받았다.

◇참기름집 아들이란 놀림을 딛고 대표로= 박 대표는 울산대 경영학과에서 마케팅, 브랜딩 기법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참기름집 아들로 놀림을 받기도 했던 그가 가업을 맡게 된 배경엔 아버지의 뜻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배운 공부를 참기름 업체에 접목해 식품기업으로 만들고 싶었던 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옛간을 맡기로 한 뒤로 6개월 동안 백화점을 비롯해 전국의 참기름 대리점, 참기름 기계 공장 등을 다니며 시장조사를 벌였는데, 이때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참기름 선물세트도 만들고, 60여 개의 참기름 관련 상표 등록도 하면서 브랜드화했다. ‘옛간 참기름 향을 맡고 자란 아이들은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거부가 된다’는 스토리를 입힌 돌잔치 답례품을 만드는 등 적극적 마케팅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을 3∼6개월 계속 찾아가며 이벤트 행사 시 제품 판매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열정도 보였다. 그는 “처음에는 시골 참기름이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고소한 참기름 맛에 소비자들이 반응을 보이자 대형 마트에서도 매장을 내줬는데, 이후 참기름 매출이 급속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부침(浮沈) 끝에 피어난 고소한 향기= 성장 가도를 달리던 옛간은 2017년 큰 위기를 맞았다. 대리점 확장 과정에서 본사 마진 구조가 무너졌고, 1년 반 만에 정자동 부동산 등 전 재산을 잃었다. 박 대표는 당시를 “거지가 된 시기”라고 회상한다.

당시 수중에 남은 120만 원을 들고 울주군 언양으로 향한 그는 공장 부지 한쪽에 컨테이너를 놓고 부모님과 함께 생활해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가로 보냈다. 보증금 200만 원이 없어 원룸조차 구하지 못했고, 무보험 차량을 타며 참깨 도매상을 전전했다. 마땅한 거처가 없어 부모님과 함께 찜질방에서 잠을 잘 때도 많았고, 그 비용조차도 없어서 컨테이너에서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박 대표는 이런 어려움을 딛고 2018년 1월 재기의 불씨를 지폈다. 깨 도매상에서 외상으로 깨를 조금씩 사 다시 참기름을 만들고, 이를 주변 식당이나 마트에 팔았다. 2019년 한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옛간의 들기름 맛을 보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또 다른 프랜차이즈에 납품이 됐고, 시중에 판매되는 밀키트 제품에도 옛간의 들기름이 들어갔다. 공장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처음에 1개뿐이던 컨테이너가 16개까지 늘어날 정도로 대반전을 이뤄냈다. 박 대표는 2022년 협소한 공장을 벗어나 150억 원을 들여 현재의 울주군 상북으로 공장을 옮겼다. 새 공장에서는 초기에 맛을 못 찾아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2025년 초부터 정상화됐다. 현재 옛간의 참기름은 전국 주요 백화점 등 260개 매장에서 판매될 정도로 인기다. 지난해 매출은 59억 원, 올해 매출 목표는 150억 원이다.

박 대표가 들기름을 짜기에 앞서 깨 상태를 확인하며 들어 보이는 모습.  윤성호 기자
박 대표가 들기름을 짜기에 앞서 깨 상태를 확인하며 들어 보이는 모습. 윤성호 기자

◇외국에서도 찾는 고소한 매력= 현재 옛간은 하루 2t의 참기름과 들기름을 생산하지만, 매일매일 재고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인기다. 온라인 판매장에서는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참기름·들기름을 판매한다. 박 대표는 현재 90% 이상 자동화된 공정을 더욱 업그레이드해 올해 안에 100% 무인화 시스템을 갖출 예정이다. 목표는 하루 생산량 5t이다. 박 대표는 이를 바탕으로 올해를 ‘창업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글로벌 식품공장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미 옛간의 고소한 맛을 세계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최근 미국에서 현지 식품업체가 소비자 1500명에게 들기름 테스트를 했는데, 옛간 제품이 가장 좋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지난해 9월에 들기름 4만 개를 판매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도 4000개를 추가로 팔았다. 다음 달부터는 홍콩의 대형 호텔에도 참기름을 납품하기로 했고, 이곳의 대형 마트에서도 참기름을 판매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박 대표는 “현재 세계적인 K푸드 열풍으로 라오스, 영국, 홍콩,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옛간의 제품을 구입하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미국 등 해외에 한국의 고소함을 수출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역민과의 상생·체험관광 활성화도 한몫= 박 대표는 지역 농민이 생산한 깨를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울산이 산업도시인 탓에 깨 농사를 짓는 농민이 많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깨를 팔려는 농민이 있으면 모두 사들인다. 지역 농협을 통해 농민들에게 알리고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박 대표는 “한때는 밭에서 직접 깨 농사를 지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기후 등 여건이 맞지 않아 지역 주민 우선으로 좋은 가격에 깨를 사고 있다”며 “1㎏이라도 갖고 오면, 지역민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사들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공장에 국내 유일의 참기름 체험장도 만들어 식품체험관광 활성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미 지난 2013년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 참기름 체험시설을 운영하기도 했던 그는 그때 사용한 장비를 공장에 다시 설치·운영하기로 했다. 박 대표는 어린이나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직접 들기름을 짤 수 있는 이 시설을 7개가량 보유하고 있다. 박 대표는 “과거 참기름 체험장을 운영할 때 전국 여행사에서 관심을 가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며 “올 하반기에 이 시설을 운영할 계획인데,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초록우산 울산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박 대표는 6명의 아이에게 매달 200만원 씩을 후원하는 사회환원사업도 벌인다. 그는 “창업자인 할아버지가 초창기 방앗간에서 지역 주민과 함께 참기름을 나눠 먹던 이웃 간의 정을 이어받아 옛간을 지역민과 함께하는 세계적 식품기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곽시열 기자
곽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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