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봄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높은 기온에 개화는 빨랐지만, 들쑥날쑥한 3월 날씨에 주춤했던 꽃들이 지난 주말을 기화로 활짝 피어났다. 봄꽃을 대표하는 매화에는 이름이 있는 매화가 있다. ‘사매화(四梅花)’다. 전남 순천시 선암사에 600년 된 선암매(仙巖梅)가 있다. 흰 꽃이 피는 백매(白梅)로, 꽃도 작고 열매도 작은 토종이다. 사매화 중 가장 남쪽에 위치했다. 20일쯤 꽃을 피워 만개했다. 2007년 선암매라는 이름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됐다. 선암사에는 2012년 8월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허리를 꺾어 놓은 홍매도 유명하다.

좀 위쪽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는 고불매(古佛梅·천연기념물 제486호)가 있다. 350년 된 홍매로, 사찰 경내를 향기로 가득 채울 정도로 향이 깊다. 백양사는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 참선하는 선원, 계율을 배우는 율원, 염불하는 염불원 등을 두루 갖춘 고불총림(古佛叢林)의 본사였기에 고불(오래된 부처님)이란 이름이 붙었다. 구례 화엄사에는 들매(野梅)와 홍매가 있다. 둘을 합쳐 화엄매(華嚴梅)라 한다. 흰 꽃이 피는 들매가 2007년 먼저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지정됐고, 2024년 홍매까지 확대 지정됐다. 홍매는 꽃잎이 다른 매화에 비해 검붉어 흑매(黑梅)할 정도다. 강원 강릉시 오죽헌에는 율곡매(栗谷梅·천연기념물 제484호)가 있다. 오죽헌이 들어선 1400년대에 심었으니, 족히 600년은 됐다.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 이이가 가꾸었다고 해서 율곡매란 이름을 얻었다. 신사임당은 매화 그림을 잘 그렸다. 안타깝게도 현재 생육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꽃’)고 했다. 사매화도 이름을 붙여주기 전에는 나무에 불과했지만 이름을 가진 후에는 서사를 가진 꽃이 됐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문화재청장 재임 시절 전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매화 4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며 이름을 붙였다. 매화는 ‘사군자(매·난·국·죽)’ 중 첫 번째로,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혼탁한 세상을 바라보자니, 매화가 다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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